이혼한 부부 냉동수정란은 누구 것?
동아일보 2000/09/14(목) [법Digital]이혼한 부부 냉동수정란은 누구것? 남편의 정자와 부인의 난자를 체외수정시킨 뒤 그 수정란을 냉동보관했다가 이혼한 경우 이 수정란의 ‘주인’은 남편일까 부인일까. 또 수정란은 과연 ‘인간’일까 아니면 ‘물건’일까? 최근 냉동수정란의 소유권과 사용여부를 놓고 미국의 한 젊은 이혼부부가 벌인 법정분쟁은 생명공학의 발달과 그에 따른 철학적 윤리적 법적 문제가 이미 일상으로 파고들었음을 보여준다. 문제의 부부(법원은 당사자의 신원을 밝히지 않음)는 결혼 후 임신에 계속 실패하자 인공수정을 통해 시험관 아기를 갖게 됐다. 이 부부는 딸을 낳은 뒤 임신에 사용되지 않은 수정란 7개를 냉동보관했다. 당시 부부는 이혼할 경우 냉동수정란을 폐기하기로 약속했다. 사건은 이들이 98년 실제로 이혼하면서 발생했다. 독실한 가톨릭신자인 남편이 “수정란도 생명이므로 죽일 수 없다”며 수정란의 인도(引渡)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것. 남편은 수정란을 폐기처분하는 대신 자신의 재혼한 새 아내의 자궁에 착상시켜 아이를 낳겠다고 주장했고 전 부인은 “내 동의 없이 내 자식이 태어나게 할 수 없다”며 맞섰다. 이에 대해 뉴저지주 항소법원은 6월 “수정란의 생모가 수정란의 운명을 결정할 헌법적 권리를 갖는다”며 부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재판부는 “타인의 손에 의해 자신의 아이가 양육된다는 사실을 부인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밝혔다. 수정란의 소유권을 둘러싼 법정분쟁은 80년대 후반 테네시주의 한 남성이 “이혼한 아내가 수정란을 사용해 임신하지 못하도록 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대두되기 시작됐다. 이 문제는 당시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수정란이 과연 ‘물건’인지 ‘인간’인지에 대한 논쟁까지 불러일으켰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수정란은 이 두 부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특수한 경우로 분류된다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수정란에 대한 남편의 부권(父權)을 인정,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현재 워싱턴 주 항소법원에서도 비슷한 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중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혼여성 C씨가 요구한 수정란은 익명의 제3자가 제공한 난자로 만들어졌다는 점. C씨는 자신의 난자로 만든 수정란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동의하에 남편과 함께 만든 수정란인만큼 그 속에서 태어난 아이는 자신이 키우고 싶다며 소송을 냈다. 현재 미국 전역의 불임 클리닉에 보관된 수정란은 10만개 이상이며 이가운데 분쟁 가능성이 있는 수정란만 2만여개에 이른다는 통계가 나와있다. 이 때문에 사망 또는 이혼하거나 별거할 경우 누가 냉동수정란을 보호하며 어떻게 이용하느냐를 공식화한 법안도 국회에 제출된 상태. 우리나라는 아직 수정란에 대한 분쟁사례가 없지만 부부 10쌍 중 1쌍은 불임이라는 통계가 있고 이의 해결을 위해 체외수정을 시도하는 부부도 점점 많아지는 추세여서 수정란과 관련된 법적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많다. 고려대 법대 하태훈(河泰勳) 교수는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전례도 없고 이에 관한 법안도 마련돼 있지 않은 상태지만 앞으로는 수정란의 소유권이나 폐기처분 여부 등에 관해 법적, 윤리적인 논란이 예상되는 만큼 관련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