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사대빵’ 에피소드

June 17, 2006

‘사대빵’ 에피소드 

명 순 구 (고려대 법대 교수) 

 


  요즘 월드컵 축구경기가 한창이다. 며칠 전에는 예선 1차전에서 아프리카 토고를 상대로 우리나라가 전반전에 1골을 잃어 1대0으로 계속 끌려 다니다가 후반전에 내리 두 골을 넣어 2대1의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었다. 축구에서 2대1과 같은 승부는 운동장에서 뛰는 선수들이나 구경하는 사람들을 모두 숨막히게 한다. 그런데 ‘사대빵’ 정도의 승부라면 어떠할까? 

  ‘사대빵’에 얽힌 일화는 나의 파리 유학생활 초반에 있었던 것이다. 1989년 1월 나는 프랑스 파리로 유학길에 올랐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감,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고국에 두고 가는 정든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 말 그대로 만감이 교차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실감하면서 항공기에 올랐다. 그 때에 서울과 파리 사이에는 직항노선이 없었기 때문에 앵커리지를 거쳐 거의 20시간에 이르는 힘겨운 여행 끝에 파리에 도착하였다. 

  프랑스에 도착했을 때 내가 아는 프랑스어는 ‘봉주르’ 정도였다. 내가 대학교에 다닐 때에도 지금과 비슷하게 외국어는 영어를 필수로 하고 제2외국어 하나를 선택하도록 되어 있었다. 당시 제2외국어로는 독일어와 프랑스어가 주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선배들에게 독일어와 프랑스어 중에서 무엇을 하는 것을 좋을지 물어보았다. 선배들은 거의 압도적으로 독일어를 하라고 권하였다. 그 이유는 대체로 두 가지였다. 하나는, 법학을 공부하려면 독일어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프랑스어는 수강생이 적어 결석을 하면 금방 드러나므로 수업을 빼먹는 재미를 누리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약간의 고민 끝에 독일어를 선택하여 수강신청을 하였다. 잠시이기는 하나 고민을 한 이유는 고등학교 때에 프랑스어를 하였었고 그에 따라 독일어는 ‘아베체데’(ABCD)조차도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어를 선택했던 이유는 프랑스어이든 독일어이든 내 입장에서는 그게 그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실 고등학교 때에 프랑스어 수업을 듣긴 했으나 그 당시 대학입시에서 제2외국어는 시험과목이 아니었던 관계로 대부분의 시간은 샹송을 듣는다든가 하는 식으로 보냈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공부했다는 인식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렇게 독일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에게 있어서 독일어 수업은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최소한 ‘아베체데’는 알고 앉아 있는데 나는 그 수준도 안 되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어를 선택했더라면 이러한 정도의 어려움은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후회가 들기 시작하였다. 프랑스어 시간에 샹송을 들었을지언정 그것도 큰 배움이라는 것을 절감하였다. 서당에서 지낸 개와 들판을 헤매던 개가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얼마간의 고민 끝에 나는 독일어 학원에 등록하였다. 그렇게 독일어 공부를 시작하였는데, 언제부터인가 그것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그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나는 독일 유학을 계획하고 있었다. 

  학부시절부터 학문으로서의 법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였다. 석사과정 지도교수님께서는 프랑스에 가서 민법을 공부하기를 권하셨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프랑스민법을 공부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긴 하겠는데 프랑스 유학 쪽으로 마음을 굳히기가 쉽지는 않았다. 이미 독일어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에 등을 돌리고 새로운 것을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프랑스어 기초문법 정도를 깨우친 정도에 불과한 어학수준으로 떠난 유학은 지금 생각해 보니 차라리 모험이었던 것 같다. ‘사대빵’ 에피소드는 프랑스 유학 초반에 있었던 중대한 사건이었다. 

  파리에 도착한 지 며칠이 지나 이미 파리에서 유학을 하고 있던 학교 선배와 만나 유학생활의 이모저모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때 나에게 있어서 가장 절실한 관심사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프랑스어를 듣고 말하고 쓸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 선배에게 얼마나 살아야 프랑스어를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나의 프랑스어 수준을 잘 알고 있는 그 선배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사대빵이다!”라는 단호하고 명확한 말이었다.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그 말을 축구의 스코어 ‘4대0’으로 이해했다. 유학생활은 강팀과 만나서 싸우는 축구경기 같은 것이고, 그 스코어가 ‘4대0’이니 이런저런 욕심 가지지 말고 차분하게 자신의 최선을 다하여 ‘4대1’이라도 만들고자 하는 마음으로 생활을 하라는 주문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당시 너무나 정확한 대답이라고 생각한 나는 더 이상 그와 유사한 질문을 되풀이하지 않았다. 

  며칠간의 파리생활을 마치고 어학과정을 예약한 디종(Dijon)대학교로 떠났다. 디종은 파리에서 약 300Km 정도 남쪽에 있는 도시로서 와인 산지로 이름이 높은 부르고뉴(Bourgogne) 지방의 중심도시이다. 그 곳에서 어학을 공부하던 중에 이상한 느낌이 자꾸 스쳐지나갔다. 프랑스어 선생님이 ‘사대빵’과 비슷한 말을 꽤 자주 하는 것 같았다. 여러 날의 노력 끝에 그 말이 “Ça dépend!”이라는 것을 알았다. 정확히 발음을 하자면 ‘사대빵’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싸대빵’인데, 그 뜻은 “상황에 따라 달라요!” 정도가 될 것 같다. 영어로는 “Case by case!”에 해당하는 말로 프랑스 사람들이 매우 자주 쓰는 말이다. 그 선배가 경상도 사람이어서 쌍시옷 발음을 잘 못하는 관계로 “Ça dépend!”을 ‘사대빵’으로 발음한 것이다. 그러니 그 선배의 대답은 “프랑스어 수준 향상은 사람마다 다르니 모두 하기 나름이다!”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그런데 유학 초반 불안한 마음으로 가득했던 시기에 나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는 “Ça dépend!”도 통하는 말이었고 ‘4대0’도 통하는 말이었다. 모레 새벽으로 다가온 월드컵예선 2차전의 상대는 프랑스이다. 우리 선수들이 프랑스를 이겨줄 수 있을까? 

 


[2006년 6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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