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백원만 아저씨가 500원을 달라고 하였는데

September 30, 2005

백원만 아저씨가 500원을 달라고 하였는데 

명순구 (고려대 법대 교수) 

 


  대학교 주변에는 단순한 홈리스로 보기에는 어려운 기인들이 자주 목격된다. 서울대학교에는 ‘개 아줌마’, 성균관대학교에는 ‘껌팔이 아줌마’, 연세대학교에는 ‘회색할머니’, 이화여자대학교에는 ‘베토벤 아저씨’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대학가에서 생활하는 기인들의 행태를 모두 제각각이지만,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한 자리를 지킨다는 면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이러한 현상은 대학 주변이 다른 공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방적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가 혼재하는 곳이다 보니 이들 기인들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비교적 많기 때문인 것 같다. 

  고려대학교 정문 앞 지하도 안에도 기인 한 사람이 있다. 내가 학생인 때부터 그 자리에 있었으니 몇 년 모자라는 30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사람이다.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그를 ‘백원만 아저씨’라고 부른다. 쉴새없이 다리를 움직이고 있다가 가끔씩 지나가는 사람에게 100원만 달라고 말하는 데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지난 2003년에는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원만이 아저씨 돕기 사랑의 캠페인’이 열려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한 기억도 있다. 성금을 모아 그의 다리를 치료해주려고 했다 하니 그 학생들의 마음이 참으로 대견하다. 

  5~6년간의 해외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1994년에도 백원만 아저씨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고려대학교의 商圈이 정문 쪽을 떠난 이후로는 백원만 아저씨가 있는 지하도를 다니는 일이 드물어졌다. 그래도 가끔씩은 백원만 아저씨를 볼 수 있었는데 나에게 돈을 요구한 적은 없었다. 

  백원만 아저씨에 대하여 아무도 정확한 것은 알지 못하는 것 같은데, 누구의 말로는 돈을 달라고 하지도 않는데 무턱대고 돈을 주면 그는 화를 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이 사실인가 여부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백원만 아저씨와의 관계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나름대로의 방침을 세웠다. 돈을 요구하면 기꺼이 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그리 했던 것처럼 모르는 체하고 그냥 지나치겠노라고. 

  백원만 아저씨와의 느슨한 인연은 그렇게 지속되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점심식사를 마치고 지하도를 통해 학교로 들어오는 길에 그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군더더기 없이 아주 간명한 말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500원!” 순간 “왜 100원이 아니고 500원을 요구할까?” 하는 분수같이 솟구치는 의문을 품은 채 나는 주머니에서 500원 짜리 동전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주머니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지갑을 열어보았더니 그 속에는 5000원 짜리와 10000원짜리 지폐만 있었다. 지갑 속에 동전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옆에 있던 동료 교수에게 500원을 부탁했더니 그 교수는 500원 짜리 동전이 없다고 하면서 지갑에서 1000원 짜리 지폐를 꺼내 주었고, 순간 그가 요구한 500원이 아니라서 어쩌나 하는 근심을 하면서 1000원을 백원만 아저씨에게 건네주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백원만 아저씨는 아무 말 없이 1000원짜리를 받아주었다. 

  백원만 아저씨를 지하도에 남겨두고 연구실로 걸어 들어오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백원만 아저씨가 500원을 요구한 것에 대하여 나는 왜 그리도 많은 생각을 했나?”, “나는 왜 백원만 아저씨에게 선뜻 내 지갑 속에서 발견한 지폐 한 장을 주지 못했나?”, “나는 왜 백원만 아저씨가 요구한 액수인 바로 그 500을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을까?” ··· 

  오늘도 며칠 전 그 날과 같은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백원만 아저씨가 있는 지하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백원만 아저씨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약간의 걱정을 품은 채 그에게 5000원을 건네주었다. 그는 아무 말없이 그 돈을 받았다. 잠시 후 뒤를 돌아보니 그는 지하도의 그의 자리를 떠나 어디론가 급히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내 눈에 비친 그의 발걸음은 매우 가벼워보였다. 나의 발걸음도 가벼웠다. 상쾌한 가을바람이 머리 위에 가득한 중앙광장을 지나 연구실로 돌아왔다.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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