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서언] 프랑스민법전, 법문사, 2004

January 2, 2004

En félicitant la traduction du Code civil



    Grâce à MYOUNG Soon-koo, professeur de droit à l'université Korea, une version du Code civil français, complète et actualisée, est désormais accessible en traduction coréenne. Je suis très heureux de rendre hommage à ce travail considérable et précieux, résultat de 5 années d'efforts.
    On sait le rôle fondamental qu'a joué le Code civil dans l'établissement de la démocratie en France. Conçu à la Révolution, il fut arrêté par Napoléon Bonaparte qui participa personnellement aux travaux des juristes chargés de sa rédaction, Portalis, Tronchet, Malleville, Bigot de Préamenu. Ce code, promulgué par le décret du 21 mars 1804, avait pour but d'unifier, de clarifier et de mettre à jour l'ensemble des lois civiles en vigueur. En fait, il a surtout contribué à faire entrer dans les mœurs les principaux acquis de la Révolution: égalité de tous aux yeux de la loi, liberté d'entreprise, liberté de conscience et laïcité. Rebaptisé Code Napoléon au moment de l'Empire et définitivement redevenu Code civil en 1816, régulièrement actualisé, il n'a plus cesséde jouer ce rôle central d'accès au droit, de garant des libertés civiles et de témoin des grandes évolutions sociales. 
    Son influence s'est également exercée à l'étranger où, porté par les armes sous l'Empire puis par sa seule réputation, il s'est progressivement affirmé comme inspirateur en Europe, Belgique, Allemagne, Suisse, Italie, Espagne et Portugal, mais aussi en Turquie, en Egypte, en Amérique latine, au Japon et jusqu'en Corée. Qu'une version coréenne du Code civil français soit disponible en 2004, année de son bicentenaire, atteste opportunément des liens méconnus mais réels qui rapprochent nos deux Etats de droit. De nombreuses manifestations sont prévues à l'occasion de ce bicentenaire, en France - colloque à la Sorbonne et au Sénat, exposition à l'Assemblée Nationale - au Conseil de l'Europe, au Maroc, au Canada, au Brésil, au Vietnam. La traduction du professeur MYOUNG vient à point nommé pour constituer un apport coréen indispensable.
    En dépit des différences léguées par la géographie et l'histoire, nos deux démocraties sont aujourd'hui confrontées à des problèmes similaires: égalitéentre les citoyens et notamment entre hommes et femmes, laïcité publique et liberté de conscience privée, accès équitable de chacun à l'éducation et à la formation professionnelle. Les avancées de la biologie, le développement des technologies de l'information et de la communication constituent autant de défis auxquels doivent répondre le droit des personnes et ses implications éthiques. Il en va de même avec la montée de l'internet en ce qui concerne la défense de la propriété intellectuelle, la définition du droit applicable et de la juridiction compétente. Ces questions sont de trop grande ampleur pour rester confinées au droit interne. La mondialisation rend indispensables le développement du droit comparé, les échanges de jurisprudences et de doctrines, le dialogue entre juristes. L'initiative du professeur MYOUNG s'inscrit magnifiquement dans cet objectif et permet de rapprocher directement droit français et droit coréen sans passer par le truchement toujours incertain de la tradition «d'équité» anglo-américaine. 
    Je souhaite donc féliciter vivement et remercier sincèrement le professeur MYOUNG pour sa traduction qui est un apport inestimable à la coopération juridique franco-coréenne et contribue à rapprocher points de vue et pratiques juridiques, tant dans les rapports bilatéraux que dans les enceintes internationales.

Fait à Séoul, le 2 janvier 2004

François DESCOUEYTE
Ambassadeur de France en Corée



프랑스민법전 번역을 축하드리며



   고려대학교의 명순구 교수님 덕분에 현행 프랑스민법전 전부를 드디어 한국어로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약 5년에 걸친 작업 끝에 이 값지고 방대한 사업을 이루어낸 것에 대해 경의를 표시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프랑스 민주주의의 형성에 있어서 프랑스민법전이 담당하였던 중요한 역할에 대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프랑스민법전은 프랑스대혁명 시기에 기획되었으며, 뽀르탈리스(Portalis), 트롱쉐(Tronchet), 말빌(Malleville), 비고 드 프레아므뉘(Bigot de Préamenu)와 같은 법학자들과 함께 집필과정에 직접 참여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에 의해 공포되었습니다. 1804년 3월 21일의 데크레(décret)에 의하여 공포된 프랑스민법전은 당시에 적용되던 모든 민사법들을 통합하고 명확히 하며 당시의 법현실에 맞추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습니다. 특히 프랑스민법전은 ‘법 앞에서의 만인의 평등’, 기업의 자유, 양심의 자유, 정교분리와 같이 프랑스혁명을 통하여 얻은 주요한 원칙들을 관습으로 자리잡도록 하는 데에 기여하였습니다. 프랑스민법전은, 나폴레옹 帝政時代에는 ‘나폴레옹법전(Code Napoléon)’으로 명명되었다가 1816년에는 다시 ‘민법전(Code civil)’이라는 이름으로 확정적으로 개명되었고 그 후에도 지속적으로 시대에 맞게 수정되어 왔는데, 이 민법전은 여전히 법으로의 접근에 있어서의 통로로서의 역할, 시민적 자유를 담보하는 역할 그리고 중대한 사회적 변혁의 증인으로서의 역할을 여전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민법전은, 나폴레옹 帝政時代에는 무력에 의해서, 그 후에는 이 민법전이 가지고 있는 자체의 명성에 의하여 해외에서도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벨기에, 독일, 스위스, 이태리, 스페인과 포르투갈과 같은 유럽 국가뿐만 아니라 터키, 이집트, 남아메리카, 일본 그리고 한국에 이르기까지 창시법안으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해왔습니다. 프랑스민법전의 한국어 번역이 프랑스민법전 공포 200주년이 되는 2004년에 발간된다는 사실은 서로 잘 인식하고 있지는 못했지만 긴밀한 두 법치국가 사이의 긴밀한 상호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프랑스민법전 공포 200주년을 기념하여 프랑스(소르본 대학과 상원에서의 심포지엄, 하원에서의 전시회), 유럽평의회, 모로코, 캐나다, 브라질, 베트남 등지에서 수많은 행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출간된 명순구 교수님의 작업은 한국 측에서 200주년 기념행사에 보내는 큰 성원이라 생각합니다.
   지리적·역사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프랑스는 오늘날 유사한 문제에 당면하고 있습니다: 남녀간의 평등, 정교분리의 원칙, 개인의 양심의 자유, 일반교육과 직업교육에 대한 기회의 평등과 같은 문제가 그것입니다. 생물학의 발전과 정보기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라 개인의 권리와 윤리적 영향과 관련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일반화되면서 지적재산권의 보호에 있어서 적용되는 법과 법원의 관할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국내법으로 한정하기에는 너무 포괄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화의 경향은 비교법의 발전, 판례와 학설의 교환 및 법학자들 사이의 대화를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명순구 교수님의 이번 작업은 이런 목적에 훌륭하게 부합되는 것으로, 여전히 애매모호한 영미법의 ‘형평법(equity)’이라는 전통의 중재를 통하지 않고 프랑스법과 한국법이 직접 가까워질 수 있게 하였습니다.
   명순구 교수님의 번역작업은 한국과 프랑스의 법문화 교류에 있어서 더할 나위 없는 기여임과 동시에, 양국 관계에서는 물론 국제무대에 있어서도 법학적 관점과 법실무를 근접시키는 데에 공헌할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저는 프랑스민법전의 번역본이 나오게 된 것에 대하여 뜨거운 축하를 드리며 명순구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2004년 1월 2일 서울에서
주한프랑스대사
프랑수아 데스꾸에뜨 드림



머 리 말



  여기 번역된 것은 2004년 1월 1일 현재의 프랑스민법전(Code Civil)입니다. 프랑스민법전이 ‘프랑스 국민의 민법전(Code Civil des Français)’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 것이 프랑스革命曆 제12년 風月(ventôse) 30일(1804년 3월 21일)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올해로 프랑스민법전은 200번째의 생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200년의 세월 동안 프랑스민법전은 많은 경험을 하였습니다. 성립 당시부터 프랑스민법전은 그 형식과 내용에 있어서 맹렬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규정의 내용을 변경하거나 새로운 규정을 삽입하는 과정에서 때에 따라서는 그러한 개정이 프랑스 사회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극도의 비관적인 우려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風霜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민법전은 200년 동안 프랑스의 사회·경제에 관한 기본규범으로서의 역할을 꿋꿋하게 수행해 왔습니다.
  ‘프랑스민법전 제1권 [人]’이라는 제목으로 프랑스민법전 제1권에 대한 번역본을 냈던 것이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의 일입니다. 제1권은 분량으로 볼 때 프랑스민법전의 약 1/3에 해당하는 것인데, 이 부분이나마 우선 출판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그것이 전체에 대한 번역의 촉매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전부에 대한 번역이 완성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에는 여러 가지가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저의 게으름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프랑스민법전 전부에 대한 번역을 마치고 나니 무언가 큰 짐을 하나 내린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른 일도 있고 보니 프랑스민법전 번역작업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간적 틈새를 이용하여 틈틈이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집중적인 작업이 아니었다는 사실로부터 비롯된 잘못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다듬어서 보다 이해하기 용이한 번역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 책의 사용방법에 대하여 간단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왼쪽 면에는 프랑스 原語를 그리고 오른쪽 면에는 그에 해당하는 한글 飜譯을 배치하여 원어와 비교하면서 프랑스민법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둘째, 비교적 생소하다고 보이는 용어에 대해서는 각주를 달아 간단한 설명을 첨가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하였습니다. 셋째, 비교적 최근인 2000년 이후에 개정된 조문에 대해서는 개정된 조문 아래에 舊條文을 배치하여 新·舊條文의 내용을 비교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신·구조문 사이의 상이점은 구조문 부분에 밑줄을 그어 표시하였습니다(그러므로 신조문이 구조문에 내용을 첨가한 것일 뿐인 경우에는 구조문 부분에 아무런 표시가 없음). 
  프랑스민법전 번역을 생각하게 된 제1차적인 이유는 물론 제가 공부를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민법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프랑스에 유학을 했던 사람으로서의 학문적 책임감도 어느 정도는 작용한 것 같습니다. 프랑스민법전은 독일민법전 등과 함께 우리 民法典의 중요한 母法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프랑스민법전의 내용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 현대적 변화를 추적하는 것은 학문적으로나 실무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프랑스민법전과 같은 정도의 외국의 법전에 대한 번역작업은 국가의 주도적 역할 아래에서 수행하여야 할 성질의 작업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여러 분들의 격려와 도움이 있었습니다. 우선 오늘날까지 저를 학문의 길로 인도해 주신 崔達坤 선생님과 프랑스의 자끄 게스뗑(Jacques Ghestin) 선생님의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에도 또다시 법문사의 뜻깊은 배려로 소위 ‘잘 팔리지 않는 책’을 출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법문사의 배효선 사장님을 비롯하여 정현성 차장님 및 편집부의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미래를 준비하기에 분주함에도 불구하고 교정을 비롯하여 궂은 일을 맡아준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김성욱 군, 강동극 군, 김종운 군, 엄성환 군, 김영주 군, 오영걸 군, 윤혜영 양이 그들입니다. 특히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시간 동안 역자에게 세심하게 도움을 준 오영걸 군의 노고를 잊을 수 없습니다. 이들 모두에게 따스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들은 앞으로 학계 또는 실무계에서 소중한 역할을 할 것으로 믿습니다. 이 번역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祝辭까지 보내주신 프랑수아 데스꾸에뜨(François DESCOUEYTE) 주한프랑스 대사님과 한국과 프랑스간의 법문화 교류에 관하여 발전적인 시각을 보여준 주한프랑스대사관의 빠스깔 다이예즈-뷔르종(Pascal DAYEZ-BURGEON) 대학협력담당관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이 책의 표지디자인을 맡아준 이서현 양(건국대학교 예술문화대학 디자인학부 시각멀티디자인 전공)의 도움도 기억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아내와 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이 곳에 기록해 두고자 합니다.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가장 유력한 후원자가 되어 주고 있는 아내 규연에게는 고마운 마음을 넘어 미안한 마음까지 함께 전하여야 할 것 같습니다. 아들 주현에게는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점에 대하여 감사하고 앞으로 늘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프랑스의 법에 대하여 관심이 있는 분들께 이 책이 약간의 도움이라도 된다면 그것은 제게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이 우리나라 法文化의 발전에 약간의 기여라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제게 큰 영광이 될 것입니다.

 


2004년 1월 2일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연구실에서
譯者 明 淳 龜 드림

Please reload

skmyoung@korea.ac.kr

145 Anam-ro, Sungbuk-gu, Seoul, 02841, Korea

Copyright Ⓒ 2016 Professor Soonkoo Myoung of Korea University School of Law.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