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가출을 생각하는 남편

February 7, 2003

가출을 생각하는 남편 

명순구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금슬 좋게 반 백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가 있다. 어느날 남편이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어지러운 시국을 논하다가 그만 밤을 새고야 말았다. 외박을 한 것이다. 결혼 후 50년이 넘게 살아오면서 한 번도 없던 일이다. "당신, 어제 밤 어떻게 된거야!"와 같은 식의 질책이 있을 법하다. 때에 따라서는 "아예 짐을 싸서 나가라!"라는 식의 중대한 핀잔도 들을 수 있다. 

  성실한 남편이 친구들과 어울리다 하루 외박을 했기로 서니 그것을 가지고 집을 나가라고 하는 것은 균형에 맞는 제재로 보기 어렵다. 사실 아내의 속마음에 남편이 집을 나갔으면 하는 의사는 전혀 없다고 보아야 한다. 밤새 남편을 걱정하며 기다리느라 고심했는데, 무사히 돌아왔으니 반갑기도 하고 화도 나고 하는 복합적인 감정에서 나온 말일 뿐이다. 친구가 좋아 그와 밤새워 이야기하고 싶은 정도의 정신수준에 있는 사람이라면 아내의 그와 같은 마음을 충분히 새길 수 있어야 한다. 즉 집을 나가라는 아내의 질책은 "우정에도 절도가 있어야 한다"라는 뜻을 좀 거칠게 표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실제로 많은 부부들이 서로 그렇게 이해하면서 가정을 꾸리며 세대를 이어왔다. 만일 아내의 말에 따라 집을 나간다고 말한다면 이는 아내의 마음과는 정반대의 행동이다. 그런데 집을 나가라는 아내의 말에 남편이 그리 하겠다고 말한다면, 이러한 행동의 원인에는 몇 가지의 분류가 가능하다. 

  첫째는, 자신은 집을 떠날 생각이 전혀 없는데 어리석고 심약한 탓에 아내의 속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무작정 가출한 경우이다. 이 경우에는 부부간의 진실된 대화를 통하여 비교적 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아내와 남편의 속마음이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며 동거할 마음이 있으나 "아예 짐을 싸서 나가라!"라는 말을 내뱉은 아내가 괘씸하여 이번에 버릇을 고칠 요량으로 가출선언을 한 경우이다. 이 경우에는 얼마간의 냉각기를 가진 후에 속좁은 남편의 손을 잡고 마주앉아 진솔한 대화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는, 아내의 속마음이 그러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는 있으나 다른 이유로 하여 이미 가출을 결심하고 있던 차에 마침 아내의 말을 빌미삼아 가출을 선언하는 경우이다. 아무리 50년을 해로했다 하더라도 한 순간에 변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보니 있을 법한 일이다. 더 이상 아내와 동거할 의사가 전혀 없어져서 가출을 선언하는 것이라면 혹시 아쉬운 마음이 있더라도 보낼 준비를 하여야 한다. 아내의 사랑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출선언을 할 정도로 떠나고자 하는 마음이 확고하다면 무슨 말을 해도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아내가 "아예 짐을 싸서 나가라!"라는 폭언을 한 적도 없다. 아내가 한 것은 촛불을 켜고 조용하게 "부부는 서로 존중하여야 한다"라는 극히 당연한 말을 했을 뿐이다. 게다가 남편은 아내의 마음이 여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당신이 나를 미워하여 나가라고 하니, 나로서도 가출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라고 말한다. 

  최근 한반도의 안보정세가 불안하기 그지없다. 이런 시기에 미국 조야에서는 주한미군 철수 논란이 일고 있다.

 


[2003.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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