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교통문화 유감

March 15, 2006

교통문화 유감

명순구(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지구촌’이라는 말에 익숙해진지 오래이다. 그러나 가까이 들여다보면 나라마다 다른 것도 많은데 교통문화도 그 중의 하나이다. 어떤 나라 사람들은 운전습관이 거친 경향이 있고, 어떤 나라 국민은 교통질서를 지키지 않고, 어떤 나라는 교통체계가 매우 합리적인 것 같고... 

   문화는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대체로 합리적인 방향으로 진화한다. 우리나라 교통문화의 변화를 보면 그러한 믿음이 더욱 강해진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의 교통문화에는 얼른 수긍하기 힘든 것들도 적지 않다. 

   첫째, 유턴을 하는 모습이 공정하지 않다. 유턴 구간에서 자동차의 선후가 바뀌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자동차들이 유턴차선에 줄지어 있다가 신호가 떨어지는 순간 맨 뒤에 있던 것이 선두에 서고 맨 앞에 있던 것은 맨 뒤에 서게 되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진다. 유턴을 하면서 나는 성경 말씀 한 구절을 떠올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리라.” 

   둘째, 횡단보도의 녹색점멸등이 주는 스트레스이다. 녹색등이 켜지자마자 결코 느리지 않은 걸음으로 걸었건만 왜 횡단보도 중간 정도쯤에서부터 녹색등이 깜빡이는 것일까? “아직 빨간불이 되려면 한참 있어야 되니, 천천히 가라!”는 뜻인가? 그것은 아닌 것 같은데... 교통신호체계를 통하여 걸음속도를 빠르게 함으로써 국민의 체력향상을 도모하기 위함인가?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녹색등이 켜지자마자 출발한 보행자가 보통걸음으로 걸었다면 그가 길을 완전히 건널 때까지 녹색등은 얌전하게 있어주는 것이 도리에 맞는 것 아닐까? 보행자는 그냥 보행자일 뿐, 출발선 앞에서 잔뜩 긴장하고 출발신호를 기다리는 육상선수가 아니다. 녹색등의 지속기간이 60초인 지점의 경우에 15초를 얌전하게 있다가 45초 동안 깜빡이는 것보다는 45초를 얌전하게 있다가 15초 동안 깜빡이는 것이 보행자들의 정신건강에 유익할 것으로 생각한다. 

   셋째, 교차로만 생기면 신호등을 설치하는 교통행정 관행의 비효율성이다. 오랫동안 내가 퇴근길로 자주 이용하던 도로에 요즘 교통체증이 말이 아니다. 예전에는 비교적 소통이 원활했던 도로이다. 이는 통행량의 변화로 인한 것이 아니다. 그 길을 보수하여 정비한 후 교차로에 신호등을 설치한 후로 발생한 현상이다. 이 교차로는 두 길이 만나는 곳인데 그 중 하나는 통행량이 많지 않은 도로이다. 그 곳에 신호등을 설치한 것이다. 교차로에는 꼭 신호등이 있어야 하나? 교차로의 교통체계로서 신호등이 유용한 시설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나 효율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유럽에 가면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가 많다. 프랑스의 롱뽀엥(rond point), 영국의 라운드어바웃(roundabout) 같은 시설이 신호등을 대신하고 있다. 롱뽀엥은 교차로의 가운데에 설치된 둥근 모양의 잔디밭 또는 조형물을 중심으로 자동차들이 시계반대방향으로 진행하면서 좌회전, 우회전, 유턴 등을 하도록 되어 있다. 빠리의 개선문은 거대한 롱뽀엥인 셈이다. 롱뽀엥에서는 중앙부분에서 돌고 있는 자동차에게 우선권이 있다. 롱뽀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방향지시등을 켜고 왼쪽 차에게 우선권을 주면서 조금씩 접근하여야 하고, 롱뽀엥을 빠져나가는 차 또한 방향지시등을 작동시켜 자기 오른쪽에 있는 운전자를 배려한다. 이와 같은 양보와 배려 속에서 롱뽀엥은 효율적인 교통시스템으로 기능한다. 교차로가 생겼다고 하여 무조건 신호등을 설치할 일은 아니다. 

   넷째, 위성항법장치(GPS)가 제공하는 정보의 적절성 문제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차량자동항법장치(소위 ‘내비게이션’)를 탑재한 자동차가 급증하고 있다. 이 장치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유익한 물건임에 분명하다. 지도와 함께 음성으로 자세하고 친절하게 정보를 제공하다 보니, 초행이라든가 또는 선천적으로 길눈이 어두운 사람에게는 고맙기 이를 데 없는 신기한 도구이다. 실시간으로 교통정보를 제공하여 도로이용률을 극대화함으로써 교통체증 해소에도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GPS가 제공하는 정보 중에는 적절성에 문제가 있는 것도 있다. 속도감시기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이 그것이다. A市와 B市 사이의 거리가 100km이고, 그 도로의 법정속도는 왕복 4차선의 국도로서 시속 80km라고 해보자. A市와 B市 사이의 100km 구간에는 도로의 사정에 따라 시속 60km, 40km, 20km 등의 다양한 제한속도가 부가될 수 있다. 만약 GPS가 제공하는 정보가 이와 같은 법정속도와 제한속도를 일깨워주는 것이라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그러나 GPS는 무인속도감시기의 위치까지 정확하게 알려준다. 운전자로서는 무인속도감시기가 설치되어 있는 구간에서만 조심을 하면 속도위반으로 적발될 염려가 거의 없다. 종전에는 사람이 하던 속도감시를 무인감시기로 대체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할 때 그 심각성은 더욱 커진다. 제한속도가 시속 40km로 되어 있는 총 5km의 구간 중 한 지점에 무인속도감시기가 설치되어 있다면, 5km 전구간에서 시속 40km를 넘지 말라는 것이지 무인속도감시기가 있는 지점에서만 그리 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런데 GPS는 속도제한이 시작되는 지점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단속지점을 알려준다. 단속지점을 알려준다고 하여 사람들이 다른 지점에서는 반드시 법을 위반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단속지점을 알려주는 행위가 다른 곳에서는 과속을 하라는 의미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정보가 적절하지 않음은 분명하다. 모든 국민에게 경찰관의 근무위치를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기계를 나누어주었다고 하여 반드시 범죄가 늘어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기계가 부적절한 도구라는 사실만은 명백하다. 

   교통문화의 구체적인 모습은 나라마다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의 같고 다름과는 별도로 각 나라의 교통문화에는 수준의 높고 낮음이 있는 것 같다. 교통문화의 수준을 재는 척도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위에서 말한 네 가지는 우리 교통문화의 수준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다. 

 


[2006.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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