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바르게 살자”란 말이 잘못은 아니지만...
“바르게 살자”란 말이 잘못은 아니지만... 명순구(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고려대학교 사회교육원 건물 앞 종암동삼거리 중앙에는 조그만 공간이 있다. 자동차 도로 한복판에 마치 섬과 같은 모습으로 남아있는 공간이다. 전에는 아담한 나무 몇 그루와 잔디밭으로 조성되어 깔끔하다는 느낌을 주던 공간이었다. 그런데 언제인지 정확한 시점은 잘 알 수 없으나 몇 년 전부터 그 곳에 거대한 돌덩이가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 돌덩이에 커다랗게 새겨진 글씨는 “바르게 살자”이다. “바르게 살자”라는 말에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그런데 나는 그 돌덩이와 그 문구를 처음 본 순간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사람마다 각자 좋고 싫은 것에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대체로 표어라든가 구호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나의 이러한 성향은 아마도 가지각색의 표어와 구호가 만발하던 학창시절의 경험에 기인한 것 같다. 1968년에 국민학교를 시작하여 1987년에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기까지 나의 한국에서의 학교생활은 모두 군부독재의 시대였다. 그 시대에는 표어도 많고 구호도 많았다. 쥐를 잡자느니, 아이는 몇 명을 낳아야 한다느니, 간첩을 어떻게 하자느니, 누구를 때려잡자느니, 무슨 정신을 계승하자느니... 모두 기억할 수 없을 정도이다. 군부독재 시대는 그 앞부분이 朴씨 성을 가진 사람이었고 뒷부분은 全씨 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 다를 뿐, 기본적인 색깔은 거의 같은 어둡고 슬픈 시절이었다. 나만의 경험인지는 모르겠으나 대체로 나에게 있어서 표어와 구호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암울한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바르게 살자”라는 말 자체에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그런데 표어나 구호를 부르짖는다는 것은, 현재의 상태는 그 표어나 구호가 주장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어떤 교도소 복도에 “내일은 착한 사람이 되자”라는 표어가 있다면 그것은 그곳에 있는 사람이 현재 착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고려대학교 앞 큰길 한복판에, 그것도 집채만큼이나 큰 돌덩이에 쓰여진 “바르게 살자”라는 구호는 고려대학교 구성원에게 결코 명예롭지 못하다. 백보 양보하여 “바르게 살자”라는 말 자체는 좋은 것이라고 해보자. 그런데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누가 그 말을 하는가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의 기분은 극단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 “바르게 살자”라고 같은 말을 하더라도 그것을 고매한 인품을 가진 분이 하는 것과 그렇지 않고 자신과 비슷하거나 못한 사람이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고려대학교 앞에 “바르게 살자”라는 대문짝만한 글을 쓴 사람은 누구인가? 그 주체는 소위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이다.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는 새마을운동중앙회 및 자유총연맹과 더불어 3대 관변단체 중의 하나이다. 1979년 10·26 사건 이후 정치적 혼란을 틈타 정권을 찬탈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소위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선포하였고, 같은 해 5월 31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약칭 ‘국보위’)를 설치하였다. 상임위원장은 당시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서리로 있던 전두환이었다. 국보위의 지도와 명령으로 ‘사회정화위원회’가 만들어졌는데, 노태우 정권의 등장과 더불어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로 전환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회정화위원회는 삼청교육대 사건 등 인권탄압이 문제되는 여러 사건과 연관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와 같은 역사를 가진 것이 바로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이다. 그런데 이 단체가 고려대학교 앞에서 “바르게 살자”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것은 무례한 행동이다. 모든 사정을 알고 나면 사람에 따라서는 작년에 개봉된 어떤 영화의 여주인공의 대사와 같이 “너나 잘 하세요”라고 말할 가능성도 있다. 우리는 모두 바르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바르게 살자”라는 구호를 외쳐야만 바르게 사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고려대학교 앞에 있는 큰 돌을 누구 허락을 받고 어떤 절차를 거쳐 설치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잘 알아보고 같은 절차를 밟아 철거했으면 좋겠다. 그것도 빠른 시간 내에 말이다.
[2006년 2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