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봄꽃들의 행태와 손해배상청구권

April 30, 2003

봄꽃들의 행태와 손해배상청구권

명순구(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한 제자가 어떤 공간에 '서울의 봄'이라는 제목으로 이런 글을 올린 것을 보았다. 

    시멘트와 철골이 대지를 덮고있는  서울에도 봄은 온다.
    사람들이 외투에 쌓여 있는 동안 나무는 봄을 품고 꽃을 피운다.
    서울의 봄은 조그만 꽃잎을 틔우는 산수유 나무에서 시작된다.
    산수유 꽃에 노란색이 가득할 때 긴 꽃술을 가진 진달래 꽃이 핀다.
    그 동안 목련은 꽃망울을 틔워내어서 하얀 속살이 보일듯 말 듯 하다.
    목련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개나리는 미친 황색의 물결을 일으키고  목련도 천사의 날개를 편다.
     이맘 때가 되면 황사비가 내린다. 마치 3월 초에 눈이 내리는 것 처럼.
     황사비에 쓸려서 개나리의 기새도 잦아들고 순백의 목련이 추락한 순수가 된다.
     슬픔을 느낄 여지도 없이 어느새 벚꽃이 절정을 이룬다.
     홑벚꽃 사이에 피어오른 겹벚꽃은 외롭고 고독하다.
     벚꽃잎이 바람에 날려 눈처럼 쏟아질 때 겹벚꽃은 외로이 꽃을 떠안고
     다음날 아침에 송이의 형상을 안고 스러진다.
     벚꽃이 지면 붉은 철죽이 여름이 오는 것을 알린다.
     나무 가득이 피어오른 철죽은 독이 올라서 6월까지 지지도 않고 붉게 물들어 있다.
     어설픈 지구과학 지식을 더듬어 보아 기억한 
     오호츠크해 기단과  북대서양 기단이 만나서 만나는  장마전선이 쏟아 붓는 빗줄기에
     철죽꽃이 지면서 봄날은 간다.

  겨울의 찬 기운이 채 가시기 전부터 시작되는 꽃의 축제에 시간적 순서가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매년 봄 일정한 시기에 꽃들이 피는 것은 자연질서에 있어서 그들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의무의 측면도 있다. 식물들에 있어서 꽃은 자신의 자태를 뽐내는 방법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생존을 위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보면 권리적 측면이 있다. 

  한편, 일정한 시기에 꽃을 피움으로써 대자연의 질서에 참여하여야 한다는 점에서 보면 의무의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여기에서 봄꽃에게 부과된 의무의 측면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봄꽃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종류에 따라 꽃이 피는 순서가 분명히 있었던 것 같다. 예컨대, 개나리와 진달래가 피고 그 뒤를 이어서 목련, 벚꽃, 라일락, 철쭉... 그런데 올해에는 이 질서가 깨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들 꽃들이 같은 시간에 병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봄꽃들은 그냥 피기만 하면 자기 의무를 다하는 것이 아니다. 순서를 지켜 피는 노력을 함으로써 자신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다. 성실한 의무이행을 하지 않은 꽃들을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민법 제2조 제1항은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기초하여 성실하게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소위 '信義誠實의 原則'이다. 이 원칙에 위반한 것으로 판단되면 권리의 행사가 저지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손해배상채무를 부담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자연의 한 구성원인 우리 사람들이 꽃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손해배상청구권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꽃들이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사람들이 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행태를 저지른 결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개나리와 벚꽃이 함께 피는 상황을 참아내야만 한다. 

 


[200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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