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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소위 ‘5·2 사태’의 딜레마를 넘어 - ‘기부금재분배제도’를 제안하며 -

소위 ‘5·2 사태’의 딜레마를 넘어 - ‘기부금재분배제도’를 제안하며 - 명순구 (고려대 법대 교수) “이건희 회장에게 명예철학박사학위를 수여하는 것은 부당하다!” 지난 5월 2일 삼성 이건희 회장에 대한 名譽哲學博士 學位授與를 비판하는 진영에서 나온 말 중의 하나이다. ‘5·2 사태’로 불리기도 하는 이 사건은 한국사회의 갈등요소가 집약되어 그 자체로도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言論의 황색저널리즘까지 가세하여 사회적 파장이 적지 않았다. 소위 ‘5·2 사태’는 겉으로 드러난 당사자간의 갈등의 표출인 동시에 한국 사회의 성장과 분배의 문제, 대학의 모럴 등과 같은 극히 난해한 요소들이 부딪힌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5·2 사태’에는 여러 종류의 딜레마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건희 회장에게 명예철학박사학위를 수여하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문제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批判과 再批判을 반복하면서 견해가 팽팽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이 논쟁에 참여할 생각은 없다. 다만 ‘5·2 사태’ 속에는 딜레마 요인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유의하고자 한다. “이건희 회장에게 명예철학박사학위를 수여하는 것은 부당하다!”라는 주장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하나는 “기업인에게 무슨 명예철학박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건희 회장과 같은 사람에게 무슨 명예철학박사?”라는 것이다. 후자에 대한 판단은 ‘5·2 사태’에 관한 논쟁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므로 전자의 문제에 한정하여 생각해 본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기업인과 명예철학박사학위도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의 논거로는, “철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이다” 정도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철학적 식견이 없는 기업인이 훌륭한 기업인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이러한 사정은 이건희 회장의 명예철학박사학위 授與答辭에도 다음과 같이 잘 나타나 있다: “오늘날 지식과 정보의 양은 넘쳐나는 반면 그 본질을 찾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지식을 탐구하고 자기를 성찰하는 철학적 지혜를 길러야 합니다.” 기업가에게 현실적으로 가장 가까운 학문은 공학, 법학, 경영학 등과 같은 분야일 것이다. 그런데 이들 실용학문은 하나같이 哲學에 많은 것을 의지하고, 은혜를 입은 바가 크다는 사실에 유의하여야 한다. 여기에서 哲學이라는 학문의 중요성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실용학문과 철학의 관계를 통하여 균형있는 학문발전을 위한 하나의 단서를 탐색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요즘 한국의 大學社會는 ‘CEO 총장’이라는 용어에 익숙하다. 재정적 기반없이 大學과 學問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인식 아래 대학교마다 기부금을 유치하느라 분주하다. 약간의 경험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기부금을 유치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부금의 양태도 세월에 따라 변화가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篤志家가 施惠의 차원에서 대학교에 기부금을 선사하는 모습이 많았던 것 같은데, 요즘 들어서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로 企業에 의한 기부가 많다. 그리고 기부의 형태로는 ‘지정기탁제’가 늘어나는 것 같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각 기관 또는 단과대학마다 기부금의 액수가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지게 된다. 경제적 효율분석에 밝은 기업으로서는 대체로 실용학문 분야에 기부금을 낼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기부금을 희사하면서 그 곳의 구성원에 대한 광고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같은 학교 안에서도 기관 또는 단과대학마다 빈부의 격차가 너무 심하게 벌어지고, 게다가 기부금을 유치하지 못한 것이 해당 분야 교수들의 무능으로 인한 것처럼 매도되는 경우도 없지 않은 것 같다. 모금활동은 결코 일반 교수의 본질적 업무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없음에도 말이다. 대학교 안에서도 分配의 미덕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굳이 허쉬만(Hirschman) 교수의 터널효과(Tunnel effect)를 거론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분배를 고려하지 않는 사회는 장기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기업가에게 名譽哲學博士學位를 수여하는 것이 어색한 일은 아니듯이, 기업가는 哲學이라는 학문에게 경영과 철학의 어울림에 대한 대가를 지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만약 기업가가 그 일에 소극적이라면 학문의 균형적 발전과 미래의 인재양성을 본업으로 하는 대학교 내부에서라도 무언가 적극적인 조치를 제도화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을 처음 시작하는 것이 우리 高麗大學校이면 좋겠다. 이와 같은 취지에서 고려대학교 가족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자 한다: “지정기탁금의 일정비율(예: 지정기탁금의 5~10%)을 ‘기부금재분배기금’이라는 이름으로 적립하여 운용하자.” 이 기금은 상대적으로 지정기탁금의 혜택을 덜 누릴 수밖에 없는 기관 또는 단과대학의 발전을 위하여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제도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바른 뜻으로 힘을 모은다면 무난히 이겨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連帶 없이는 自由도 없다”라는 것은 오늘의 大學人에게 중요한 명제이다.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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