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어느 장애우의 귀한 조언
어느 장애우의 귀한 조언 명순구(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며칠 전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되었다. 청계천 복원공사 준공식을 조금 앞두고 마련된 것으로 그 행사에는 비장애우가 시각장애우를 동반하고 동대문에서부터 시청 앞까지 걷는 프로그램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와 아내는 아들과 함께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아침에 동대문 근처의 조그만 광장에 참가자들이 모두 모여 장기자랑과 경품추첨 등으로 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이 행사가 끝난 후 행진이 시작되었다. 시각장애우를 인도하는 방법을 간단히 배운 후에 파트너를 정하였다. 나는 한 젊은 청년의 파트너로 결정되었다. 그 청년에게 다가갔는데 어머니로 보이는 중년의 아주머니가 그를 부축하고 있었다. “어머니이신가 봐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인사를 나눈 뒤에 시청앞 광장을 향해 걷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불과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우리는 대열을 이탈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장애우들은 모두 시각장애만을 가지고 있어 걷는 데는 불편이 없었으나 나의 파트너는 시각장애와 지체장애를 함께 가지고 있어 걷는 속도에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청년의 왼쪽을 부축하고 그의 어머니는 오른쪽을 부축하여 아주 천천히 목표를 향해 전진하였다. 더운 날씨에 어려운 걸음이 힘들기도 할 터인데 그 청년의 얼굴은 명랑함으로 빛나고 있었다. 세 사람이 한 팀이 되어 걸어가면서 그의 어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런 특별한 날이 아니면 이렇게 밖에 나와 활보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 그 청년이 장애를 가지게 된 사연, 그 청년이 장애를 가지게 되기 전의 모습... 그의 어머니는 그 청년의 장래에 대한 고민도 털어놓았다. 고민의 핵심은 그 청년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장애인 교육프로그램의 경우 그 대상이 지체장애인,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등으로 되어 있어서 그 청년과 같이 복합적인 장애를 가진 사람이 참여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무엇 하나 배우고자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자니 지체가 자유롭지 못하여 참여할 수 없고, 지체장애인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자니 눈이 보이지 않아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장애인 교육프로그램에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그 어머니의 이야기는 설득력이 있었다. 어머니의 말에 그 청년도 몇 마디 말을 덧붙이며 거들었다. 혹시 장애인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해 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 청년 모자의 말은 그 행사로부터 여러 날이 지난 지금에도 너무 생생하게 남아있다. 장애인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함에 있어서 그 대상을 정하여야 할 것이고 교육대상을 정함에 있어서는 장애에 대한 분류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분류에 빈틈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빈틈은 그 청년 모자에게 큰 불편함으로 작용하고 있다. 나는 학문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학문을 함에 있어서도 어떤 대상들을 분류하는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분류는 신중하게 해야 할 일이다.
[2005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