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일괄적으로 이루어진 사직서의 제출과 반려
일괄적으로 이루어진 사직서의 제출과 반려 명 순 구 (고려대 법대 교수)
高麗大學校에서 교수생활을 한 지가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한 곳에서 그 정도의 기간을 지냈으니 학교의 살림살이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음직도 합니다. 그런데 아는 것은 제가 근무하는 法科大學에 관계된 일부의 사항에 그칠 뿐, 학교 차원의 살림살이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아는 것이 없습니다. 세상물정을 모르는 나이에 교수가 되었고 그 당시의 소극적 태도가 아예 습성화된 탓일까요? 아니면 원래 주변감각에 무딘 개인적 성향 탓일까요? 아니면 내놓고 말하기에는 부끄러운 저의 얄팍한 이기심 때문일까요? 이런 모든 요인들이 골고루 작용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 추가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고려대학교에 대한 저의 信賴가 바로 그것입니다. 즉 어떤 문제상황에 처할 때마다 고려대학교가 행한 선택들은 한국의 선도대학으로서 대체로 납득할만한 것이었기에, 연구하고 강의하는 것도 벅찬 저로서는 별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려대학교 개교 100주년을 며칠 앞에 둔 5월 2일에 벌어진 사건을 지켜보면서 고려대학교에 대한 저의 신뢰는 상처를 받았습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名譽哲學博士 學位授與式 사건이 그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한국의 사회갈등이 모두 집약된 채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으로서, 분석하기에 따라서는 수십 편의 論文이 나올 법도 한 사안입니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학교 내외에서 많은 주장과 논의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미 제기된 생각들을 반복할 의도가 없습니다. 우리의 상처를 다시 끄집어내어 아픔을 상기시키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학교측의 주장과 그 반대측의 주장을 분석하고 그 중 한 쪽을 두둔할 의향도 없습니다. 다만, 고려대학교 교수의 일원으로서 가장 납득하기 어려웠던 것은 補職敎授 전원이 일괄적으로 사표를 제출하였는데, 人事權者는 그 사표를 다시 일괄적으로 반려한 대목입니다. 그 내막을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일괄적 사표 제출과 그 반려가 타당한 판단이었는가 하는 문제와는 상관없이 제가 보기에는 그 자체가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일괄사표를 제출할 사안이 아니었다면 모든 보직교수들이 한결같이 잘못된 판단을 한 것이고, 그 반대로 만약 일괄사표를 제출할 정도로 중대한 사안으로서 일괄사표 제출이 바른 판단이었다면 인사권자가 잘못된 판단을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어디 완전할 수야 있겠습니까? 그러나 학교 구성원을 대표하는 행정라인의 당국자들의 행동들이 최소한 납득할 만한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명예학위의 개념을 명확히 정립하는 한편, 명예학위 수여 대상자의 선정에 있어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제도화하여야 할 것으로 봅니다. [200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