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http://www.korea.ac.kr" 첫화면에 뜬 '고대 재무관리 세계 4위 차지'를 보고난 후

March 31, 2005

"http://www.korea.ac.kr" 첫화면에 뜬 '고대 재무관리 세계 4위 차지'를 보고난 후

명순구 (고려대 법대 교수)

 


  프랑스 르아브르 대학교에 초빙교수로서 지내야 할 날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고국을 떠나올 때에 느꼈던 해방감도 이제는 모두 잠들어버린 것 같다. 그리운 것들을 많이 남겨두고 온 고국으로 돌아가서 그것들과 다시 재회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설레이는 순간도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고뇌와 번민들은 어찌보면 모두 '외롭지 않은 것에 대한 대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움의 여러 대상 중에 나의 모교 고려대학교도 빠질 수 없다. 이제 캠퍼스 여기저기에서 피어날 봄꽃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마치 잠자는 아기의 얼굴을 볼 때에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마음이 되기도 한다. 어떤 것에 대한 지나친 사랑은 병이라고도 하는데, 이곳은 프랑스이고 이국 땅에서의 일시적인 상태일 것이니 크게 걱정하지는 않고자 한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오면서 한국에 대한 소식도 알아야 할 것 같기도 하여 인터넷으로 뉴스도 보고, 고려대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 이곳 저곳을 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런데 얼마 전 학교 홈페이지를 보는데 첫 화면에 다음과 같은 창이 열려있었다: '고대 재무관리 세계 4위 차지'. 이것을 보고 처음에는 "고려대학교 본부가 재무행정 관리를 잘하는 것으로 평가를 받은 모양이다"라고 생각하였다. 어떤 조직이든 사람과 돈에 대한 관리가 제일 중요한 것이니 돈 관리를 잘 한다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런데 그 내용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본교 경영대학이 재무관리 관련 학술논문 발표에서 45위를 차지하였다. 미국대학교를 제외하면 런던 비즈니스 스쿨, 홍콩과기대, 토론토 대학에 이어 옥스퍼드대학, INSEAD 대학과 동률 4위를 차지하였다. WP Carey 경영대학에서 지난 3년간(2002~2004) 세계 4대 재무관련 저널에 게재된 논문 수를 기초로 학교의 랭킹을 발표하고 있는데, 본교 경영대학은 지난 3년간 8편의 논문을 작성하였다. 미국을 포함한 랭킹 1위는 뉴욕대학(52편), 2위는 하버드대학(46편), 3위는 시카고대학(31편)이 차지하였다..." 

  어느 한 분야에서 세계 45위를 했다고 해도 참으로 칭찬을 받을 일이다. 올림픽 경기에서 45위를 했다고 해도 그런데, 학문 분야에서 세계 45위를 했다면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올림픽 경기와 달리 학문은 언어를 매개로 하는 것인데, 재무관리 분야의 랭킹을 매기는 기준이 되는 저널도 한국어로 된 것은 아닐 것이고, 게다가 평가기준 자체도 어찌 보면 유니버설한 기준이라기보다는 미국의 기준이 아닌가 싶은 상황일 것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45위를 했다는 것은, 진정한 수준에 있어서는 그것을 훨씬 상회한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고대 재무관리 세계 4위 차지'가 아니라 '고대 재무관리 세계 45위 차지'라고 해도 학교 홈페이지 첫 화면에 넣기에 손색이 없는 사건이다. 그런데 세계 45위를 왜 세계 4위라고 했을까? 참으로 이상하게 느껴졌다. 미국의 대학을 제외하고 순위를 매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등수는 그래도 한 자리 숫자에 들어야 등수로서 명함을 내밀 수 있다는 성숙되지 못한 생각이 작용한 탓일까? 

  지금 고려대학교에는 '글로벌'의 바람이 불고 있다. 교내에 스타벅스 커피점이 들어서고, '영어강의 50%', '세계100대 대학 진입' 등 고려대학교가 표방하고 있는 글로벌화 전략이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단지 시차만 있을 뿐 같은 내용으로 이런저런 대중매체에 소개되고 있다. 약 10년 전 쯤에 어떤 기자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연세대학교는 없는 일도 잘 포장하여 보도자료로 주는데, 고려대학교는 왜 있는 것도 포장을 못하나요?" 이제 누구도 이런 말을 하지는 못할 것 같다. 자신을 외부에게 잘 알리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아는 사람들은 충분히 아는 일을 계속 말하는 것은 점잖은 사람이 택할 바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을 남에게 알리는 것보다는 정당한 가치의식으로 필터링을 해가면서 실제로 그 일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평소 '민족고대'라는 표현에 대하여 좀 쑥스러운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고려대학교가 민족을 위해서 한 일보다는 고려대학교가 민족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오히려 더 크지 않은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고려대학교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기관이다. 단순한 사립대학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기관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에 상응하여 책임도 무겁다. 고려대학교의 시각은 우리나라의 시각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우리나라의 시각은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와 같은 주변 강국의 우리에 대한 시각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나라에서는 '세계 100대 대학'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세계의 그 많은 대학 중에서 100위 안에 든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순위의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나라마다 대학의 문화와 역할이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대학에 순위를 매기는 일을 제일 잘하고 자주하는 것이 미국이다. 그러다 보니 평가기준도 미국적인 것일 수밖에 없는데, 그 기준으로 하여 세계 100위(미국의 대학을 포함하여)를 한다는 것은 어렵고 그런만큼 훌륭한 일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하게 고려하여야 할 일이 있다. 즉 미국의 기준에 맞추어 100위 안에 들고자 힘쓰는 바람에 진정하고 궁극적인 대학의 가치를 몰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가까운 이웃과 인류의 평화를 염려하는 마음을 기초로 하지 않은 학문은 무용한 것이다. 나만을 위한 세계 100대 대학보다는 인류를 생각할 수 있는 세계 10000대 대학을 지향하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고려대학교의 밑바닥에 오래전부터 녹아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분명히 가지고 있는 강렬하고 세계적인 가치는 없는지 살펴볼 필요도 있다. '세계 45위'를 미국을 제외한 채 '세계 4위'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잘못된 일인 것 같다. 

  중학교 때인가 국어 교과서에서 보았던 너새니얼 호손의 단편소설 'The Great Stone Face' (큰 바위 얼굴)에 나왔던 '어네스트'인가 하는 주인공이 생각난다.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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