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철새를 미워한 기억
철새를 미워한 기억 명순구 (고려대 법대 교수)
아주 어렸을 때의 일로 기억된다. 학교에서 새에 대해서 배우는 가운데 새의 분류를 공부하던 때였을 것이다. 이동유형을 기준으로 새를 텃새와 철새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이었다. 텃새란 일년 내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새이고, 철새란 철 따라 이동하는 새라는 설명이 있었을 것이다. 나 혼자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인지 전혀 알 수는 없지만, 10살 언저리 그 당시에 문득 떠올랐던 생각이 아직까지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다. 선생님으로부터 텃새와 철새의 개념을 듣고 난 직후 눈깜빡할 사이에 “텃새는 좋은 새, 철새는 나쁜새”라는 관념을 형성하였던 것이다. 항상 우리 옆에 있는 새이니까 의리가 있어서 좋은 새, 줏대 없이 우리 옆에 있다없다 하니까 나쁜새, 뭐 그런 이유였던 것 같다. 그런데 선생님의 계속된 설명은 나를 꽤 혼동스럽게 했었다. 텃새와 철새의 예를 드는 순간이었다. 텃새의 예로 참새, 까치, 까마귀... 이런 것들이 거론되었다.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내가 혼란에 빠진 것은 철새의 예를 듣고 난 뒤였다. 선생님께서 철새의 예로 말씀하시는 것들 중에 제비, 꾀꼬리, 뜸부기... 이런 것들이 포함되었다. 상당한 충격이었다. 제비가 어떤 새인가? 나쁜 벌레를 잡아먹고 착한 흥부에게 은혜를 갚은 고마운 새가 아닌가? 꾀꼬리는 어떤 새인가? 목소리가 예쁘기로 이름난 새가 아닌가? 또 뜸부기는 어떤 새인가? 당시의 애창곡 ‘오빠생각’에 나오는 분위기 있는 새가 아닌가? 이런 새들이 모두 철새에 불과하다니... 약간의 배반감까지 뒤섞이며 묘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제비, 꾀꼬리, 뜸부기가 한 철에는 우리나라에서 좋은 일을 하지만 다른 철에는 다른 나라에 가서 같은 일을 한다는 상상이 되면서 그간 이들 새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호감이 거의 사라져 버렸다. 특히 제비에 대해서는 그가 겨울이 되면 강남에 간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강남이라는 곳이 그렇게 먼 다른 나라였다는 것이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철새로 인하여 생긴 배신감은 꽤 오래 지속되었던 것 같다. 그 후로 거의 40년이 지난 오늘 그 때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지금 철새를 떠올려 본다. 예전에 들었던 배반감 같은 것은 이제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제비, 꾀꼬리, 뜸부기 같은 새들에 대하여 가지고 있던 가장 처음의 좋은 인상만이 떠오른다. 우리나라에서만 좋은 일을 하지 않고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이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훌륭한 것 아닌가. 어릴 적에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누구든 자신의 마음을 열고, 눈을 크게 뜨고, 까치발을 하는 정도의 약간의 수고만 더하면 철새라는 말도 사실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만다. 자신이 생각하는 세상이 아주 넓다면 텃새이든 철새이든 모두 그의 세상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2008. 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