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매미에 대한 오해를 넘어
매미에 대한 오해를 넘어 명순구 (고려대 법대 교수)
매미를 떠올릴 때마다 참 안쓰럽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종(種)에 따라 차이가 있다지만 땅속에서 ‘굼벵이’라는 이름의 애벌레로서 짧게는 6년, 길게는 17년을 살다가, 성충으로 살아가는 기간은 고작 몇 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날개까지 갖춘 멋진 외모를 갖추기 위하여 땅속에서 기다린 세월을 생각해 보면 무상하기 짝이 없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땅속은 죽은 세계이고, 곤충은 날개를 달아야 비로소 완전한 모습을 갖춘 것으로 인정한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매미의 삶보다 무상한 삶이 어디 또 있겠는가? 그런데 매미 스스로도 자신의 삶을 그토록 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가령 어떤 종의 매미가 굼벵이 생활 10년, 성충생활 한 달의 삶을 영위한다고 해보자. 그의 수명은 10년 1개월인 셈이다. 그 정도이면 곤충의 수명치고는 매우 긴 것 아닌가? 게다가 땅위로 나온다 하여 뭐 대수인가? 땅 위에는 매미보다 힘이 세고, 빠르고, 영리한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이것들은 대체로 매미에게 위험요소로 작용한다. 날개가 없어 하늘을 날 수 없고, 햇빛, 나무, 바람과 같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없어서 그렇지 사실 땅속에서의 생활만큼 안전한 것도 없을 것 같다. 게다가 땅속에는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동료들이 옆에 있지 않은가. 굼벵이로서는 굳이 땅위로 올라와 위험을 무릅써야 할 이유가 크지 않은 것 같다. 매미가 땅위로 나오는 모습을 보면 그가 얼마나 땅위의 삶을 걱정하는지 잘 알 수 있다. 애벌레가 우화(羽化)를 위하여 나무의 줄기나 잎으로 기어오르는 시각은 대략 오후 7시경이라고 하는데, 이는 두려운 적인 새들이 잠자리에 들기 시작하는 시간이라고 한다. 우화할 자리를 잡고 번데기의 등이 위아래로 갈라지면서 매미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새들이 아침잠을 깨기 전에 매미의 몸은 완전해져 새가 달려들면 도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렇다면 매미는 무슨 이유로 이렇게까지 하면서 위험을 무릅쓰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자신의 생명을 자연의 시계에 맞추어 나가는 성실한 삶의 자세의 일환이라고 하여야 할 것 같다. 신이 자신에게 부여한 모든 모습을 모자람 없이 구현하고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매미는 정열적이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준비한 삶의 에너지를 1달 동안 화끈하게 발산하고 세상을 떠난다. 날개를 단 이후로는 매미는 결코 나약하게 살아가지 않는다. 애벌레 시절에 그가 그렇게 두려워했던 새들조차 놀랄 정도로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른다. 도심에서 자동차 소음으로 인하여 그들 사이의 소통수단인 노래가 들리지 않을 것 같으면 소리를 더욱 드높인다. 매미의 한 달은 그 모든 시간이 젊음인 것 같다. 그것이 사람과 다른 점이다. 사람의 경우에 인생을 80년으로 보면 그 기간 중에 정열이 넘치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언제부턴가 나는 매미의 삶이 무상하다는 생각을 결코 하지 않는다.
[2008. 1.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