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崇禮門과 ‘1’자 논쟁

February 14, 2008

崇禮門과 ‘1’자 논쟁

 명순구 (고려대 법대 교수)



  설 연휴 막바지에 국보 제1호 숭례문이 불로 사라지는 참담한 일이 벌어졌다. 소방대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숭례문은 “나는 이제 기어코 갈 것이다!”라는 기세로 활활 타올랐다. 사방에서 그렇게 물을 뿌려대는 데도 어떻게 그렇게 탈 수 있는지 의아한 생각까지 들었다. 불 중에는 물로 다스릴 수 없는 불도 있는 것 같다. 朱子十悔訓 중에 “不孝父母死後悔”가 있던가? 숭례문이 없어지고 나니 더욱 각별한 마음이 밀려온다. 

  지금 숭례문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타다 남은 나무, 제빛을 잃은 단청, 만신창이가 된 기와, 무모한 범행의 흔적, 책임소재를 다투는 소리, 우리 민족의 한숨소리... 그런데 나는 그곳에서 좀 다른 것을 찾아보고 싶다. 숭례문 자체가 관악산의 火氣를 막으려고 세워진 것이라는데 스스로 불에 탄 것을 보면 무언가 큰 뜻을 보이고자 그리 된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숭례문이 사라지고 난 지금에서는 ‘대한민국의 상징’이니 ‘국보 제1호’니, ‘대한민국의 자존심’이니 하는 식으로 의심 없는 명예를 누리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숭례문의 입지가 그리 화려한 것만은 아니었다. 

  숭례문은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에 의하여 조선고적(古蹟) 제1호로 지정됐는데, 이것이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 이후 國寶 체계로 전환되면서 국보 제1호가 되었다. 지정번호는 문화재 관리를 위한 기능적인 것으로 엄밀하게는 ‘제1호’라는 것이 최고가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숭례문에 대한 자격시비가 계속 있어왔다. 숭례문 대신 훈민정음 초판본이나 해인사 팔만대장경, 직지심체요절, 경주 석굴암 같은 것이 국보 제1호에 더 적합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1996년 당시 문화재관리국(현재의 문화재청)은 국보 제1호를 훈민정음 초판본으로 변경하려 하였다. 2005년에도 감사원이 문화재청에 국보 지정 변경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 숭례문에 대한 ‘자격논란’에는 일제(日帝) 콤플렉스도 작용하고 있다. 한일합방 직전에 일제는 숭례문이 교통흐름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철거하려 했으나, 임진년 전쟁 때 가토 기요마사의 일본 군대가 이 문을 통하여 한양에 입성했다는 이유로 생명을 유지했다고 한다. 이런 사연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숭례문에 대한 애증으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이다. 

  숭례문이 ‘국보’로서의 가치가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다툼이 없었던 것 같다. 문제는 ‘1’이라는 글자이다. ‘국보 제1호’에서 ‘1’이 1등이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왜 숭례문을 두고 자격논란이 벌어졌을까? 국보 제1호를 다른 것으로 변경하면 숭례문은 몇 호가 되어야 하나? 문화재적 가치를 기준으로 번호를 재조정한다면 종래의 번호에 대한 전면적 수정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나중에 혹시 최고의 가치를 가진 문화재가 새로 발견되면 현재의 번호는 또 한 칸씩 밀려야 하는가? 숭례문의 자격논쟁은 우리 사회에 깊이 스며있는 ‘1등 콤플렉스’의 한 단면인 것 같다. 

  세상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들은 원래 순위가 없다. 듬직한 것으로 치자면 바위가 1등이고, 푸른 것으로 치자면 나무가 1등이고, 부드러운 것으로 치자면 물이 1등이고, 깊은 것으로 치자면 바다가 1등이고, 높은 것으로 치자면 하늘이 1등이고... 사람도 다를 바가 없다. 공부로 치자면 甲이 1등이고, 운동으로 치자면 乙이 1등이고, 성격으로 치자면 丙이 1등이고, 잘생긴 것으로 치자면 丁이 1등이고... 사람들의 세계에서는 甲·乙·丙·丁이 모두 한결같이 갖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한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순위를 정하는 것이 불행의 시작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등수를 매기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다른 경우라면 굳이 등수를 매길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 게다가 국보의 경우에는 기준에 따라 혹은 평가자에 따라 가치가 달라 그것을 정량화하기가 곤란할 것이다. 

  숭례문에 대한 지금까지의 자격논쟁은 부적절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정말 자격논쟁에 휘말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그것도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국보로서의 자격 자체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나 숭례문 화재 하루 만에 결론이 났다. 우리나라 문화재 보존·관리·활용을 위한 최고 심의기구인 문화재위원회는 숭례문의 지위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물론 감정적인 판단은 아니었겠지만 너무 성급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피해조사도 아직 완전하지 않은 상황일텐데 무슨 자료와 어떤 근거로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화재로 인하여 종전의 지위를 잃은 낙산사 동종, 쌍봉사 대웅전, 금산사 대적광전과 같은 것들이 섭섭해 할 요소는 없을까? 잘 알 수는 없지만 무언가 머리가 명쾌하지는 않다.  

  날짜로 하루를 넘기면서 마치 “별것도 아닌 숫자놀음의 자격논쟁에 휘말릴 바에야 차라리 불타고야 말 것이다!”라는 의지를 내뿜듯 숭례문은 산화하였다. 그 시위가 성공을 거둔 것인가? 숭례문의 ‘국보 제1호’에 대한 자격논쟁은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없을 것 같다. 아니, 그렇게 무망한 논쟁은 이제 그만두는 것이 품격있는 태도일 것이다. 

 


[2008.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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