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딩’ 행복프로젝트: 대학간 공동학위제
‘고딩’ 행복프로젝트: 대학간 공동학위제 명순구(법학과 교수)
이 나라의 황야와 같은 교육현실에 내던져진 고등학생의 모습은 참담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익숙할지 모르나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한국의 교육현실은 고등학생들에게 비인간을 강요하는 정도이다. 교육기본법 제2조는 ‘홍익인간’, ‘인격도야’, ‘인간다운 삶’, ‘인류공영’과 같은 개념으로 교육이념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누가 고등학생들에게 이 교육이념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교육이념이 한낱 장식으로 전락한 지 오래이다. 지금 이 나라의 고등학생은 그런 환경에서 공부를 한다. 그들에게 “너는 왜 공부를 하지?”라고 묻는다면 무슨 답이 돌아올까? 좀 영악한 사람은 수사를 동원하여 교묘하게 말을 지어낼 것이지만, 진솔한 사람은 “좋은 대학 가려고요!”라고 고백할 것이다. 그렇다, 솔직하게 말해서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꿈은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다. 그의 부모는 자식의 이런 희망을 굴절없이 수용하여 엄청난 사교육비를 기꺼이 부담한다. 할 수만 있다면 어느 부모가 돈을 아끼겠는가? 그렇게 들어가는 비용을 모두 합치면 GDP의 4%에 이른다고 한다. 그 비용이 크면 클수록 학생들은 학원·과외에 내몰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행복지수는 내려간다. 그들의 행복지수가 내려갈수록 미래 사회는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고등학생을 이 절망의 구덩이에서 구해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것이 사회문제로 대두될 때마다 교육행정당국이 말하는 구체적인 해결책은 다소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기본방향은 거기서 거기이다. 공교육을 정상화시켜 사교육의 비중을 낮추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어떤 정권도 고등학생에게 행복의 실마리를 주지 못했다. 이와 같은 결과는 문제해결의 방안이 ‘공교육 정상화’ 이상이어야 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문제의 근본원인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눈에 차는 좋은 대학이 적다는 것이고, 둘은 일단 어느 대학에 입학을 하면 평생 그 대학의 꼬리표만을 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인생의 성공을 예약하는 셈이 된다. 인생의 성패가 이렇게 고등학교 때에 결정되다 보니 고등학생으로서는 오직 대학에 올인을 할 수밖에... 고등학생의 마음속에 고매하고 우아한 이상을 향한 치열한 투쟁은 자리하기 어렵다. 이런 환경에서는 공부만 잘하는 깍쟁이가 양산될 가능성이 높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좋은 대학이 대폭 늘어나는 것인데 이는 긴 시간을 요하는 일이다. 당장 추진할 수 있는 사업으로 ‘대학간 공동학위제’를 생각해 본다. 이 제도는 대강 이런 것이다. 어떤 학생이 어느 한 대학에 입학을 하지만 공동학위제에 참여하는 다른 대학에서 자유롭게 수강을 할 수 있고, 학위증에도 참여 대학의 이름을 함께 기재하는 것이다. 자기가 입학한 학교보다 다른 학교에서 더 많이 수강할 수도 있다. 그리고 성적증명서에는 그 학생이 수강한 교과목의 교수명도 함께 기재한다. 입학한 대학이 그대로 운명의 굴레가 되는 답답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이 제도가 실행·정착되기 위해서는 법적·제도적으로 상당한 비용이 수반될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의 성공이 가져다 줄 과실에 비하면 그까짓 비용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 땅의 '고딩'들이 평화로운 환경에서 우아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미래의 희망이다. 소위 ‘공교육 정상화’의 해법은 대학교육제도의 개선에서 찾을 일이다.
[2008. 5. 13. 고대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