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不爭而善勝

February 22, 2009

不爭而善勝

명순구[고려대 법과대학 교수]



  벌써 20년이 훨씬 더 지난 일이다.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지도교수님의 연구실 조교로서 학문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선생님의 연구실 벽에는 몇 개의 액자가 걸려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특히 내 눈길을 끌었다. 다섯 개의 문자가 종서로 쓰여진 액자인데 무슨 글자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모양이 우아해 보였다. 연구실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후 선생님께 무슨 글자인지 여쭤보았다. 선생님께서는 그것이 전서체로 쓰여진 ‘不爭而善勝’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당시 마침 다른 일로 인하여 선생님으로부터 더 이상의 설명을 듣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선생님께 그 뜻을 더 여쭙지 않았다. 내 스스로 그 뜻을 새긴 것이다. 나는 그 다섯 글자를 “싸우지 마라, 그러나 싸움에 이르게 되면 완벽하게 이겨라!”로 해석하였고 그 해석에 대하여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연구실에서 지내는 동안 하루에 한 번 이상 ‘不爭而善勝’을 생각한 것 같다. “싸우지 말아야지, 그런데 만약 싸우게 되면 반드시 이겨야지!”라는 다짐과 함께... 

  그 이후 세월이 많이 지난 어느날 그 말이 老子의 道德經에 있는 글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勇於敢則殺(결단력이 과감하면 죄인을 죽이고)
勇於不敢則活(결단력이 과감하지 않으면 죄인을 살린다) 
此兩者惑利惑害(두 가지 행동유형에는 각각 이로움과 해로움이 있으니)
天之所惡 孰知其故(하늘이 미워하는 바를 누가 그 까닭을 알겠는가)
是以聖人猶難之(그리하여 성인조차 그것을 어렵게 여기는 것이다)
天之道(하늘의 도는) 
不爭而善勝 不言而善應(싸우지 않고도 잘 이기고, 말하지 않아도 잘 응하고) 
不召而自來 繟然而善謀(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오고, 느직하면서도 잘 도모한다)
天網恢恢 疏而不失(하늘의 그물은 크고 커서 성글어도 빠뜨림이 없다)

  전체 문맥에 따를 때 ‘不爭而善勝’의 원래 의미는 하늘의 도를 따르게 되면 싸울 필요조차 없이 승리한다는 것이다. 사실 ‘不爭而善勝’의 앞뒤에 있는 글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 완전하게 이기는 것이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데, 나는 무슨 이유로 서슴없이 “싸우지 마라, 그러나 싸움에 이르게 되면 완벽하게 이겨라!”라고 새겼을까? 마치 싸워야 할 상대가 언젠가는 나타날 것이라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리고 언젠가는 생명을 건 결투를 벌여야 할 날이 올 수밖에 없는 것처럼... 

  세상의 일은 반드시 싸움과 대결을 통해서만 결판이 나는 것이 아니다. 의도적으로 주장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결판이 나는 경우도 결코 적지 않다. 위 道德經 구절의 끝부분에 있는 것처럼 하늘의 그물이 잘잘못을 가려준 것이다. 내게도 물론 그런 경험이 있다. 때로는 나의 패배로, 때로는 나의 승리로 결판이 났다. 그런데 그렇게 진행되었던 대결에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 승리와 패배의 순간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단지 꽤 시간이 지난 후에야 과거의 사실로서 그 사실을 깨닫게 될 뿐이다. 패배는 더욱 뼈저리게 다가오고 그와 아울러 상대방에 대한 존경심이 밀려온다. 반면 승리는 아주 작은 파편에 불과하여 내게 별다른 의미를 주지 않고 오히려 부끄러움이 밀려올 뿐이다.

  오늘 문득 ‘不爭而善勝’에 얽힌 추억을 떠올리고 있다. ‘不爭而善勝’을 “싸우지 마라, 그러나 싸움에 이르게 되면 완벽하게 이겨라!”로 새기는 것은 우아한 태도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평소 성글게만 보이던 하늘의 그물이 오늘은 꽤 촘촘하고 준엄하게 느껴진다.  

 


[2009.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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