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모과가 썩어가는 모습

April 30, 2010

모과가 썩어가는 모습 


명순구



  아직 봄꽃을 보기에는 이른 3월 중순, 경동시장 한약방 골목에 있는 익숙한 식당에서 정다운 사람들과 식사를 하면서 소주 몇 잔을 기울였다. 특별히 할 말이 있어서 이루어진 모임은 아니었지만 들을 말도 많고 할 말도 많았다. 술자리는 늘 그런 것 같다. 오고가는 술잔이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리라.

  저녁 9시가 좀 못되었을까, 적당히 취기가 어리고 나서 모두들 각자 집으로 향했다. 일행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택시를 잡으려 길을 걷고 있는데 노점상이 드문드문 파장을 하지 않은 채 장사를 하고 있었다. 별생각 없이 노점상들을 지나치고 있는데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그야말로 아기 머리 크기 만큼 커다란 모과를 쌓아놓고 “떨입니다. 싸게 드릴테니 가져가세요!”라고 유혹하는 할머니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렇게 큰 모과 다섯 개가 10000원이었다. 이런 탐스런 모과가 한 개에 2000원이라니... 집에 놓아두면 은은한 향기를 감상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아무런 주저함 없이 당장 사서 집어들었다. 집으로 가져가 아내에게 보여주면 “이렇게 탐스런 모과를 어디서 샀어요!”라는 경탄을 터뜨릴 생각에 가슴이 뿌듯하였다.

  집으로 들어와 약간은 설레는 말투로 아내에게 그 모과 한 다발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아내의 반응은 내가 예상한 정도로 대단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밤을 지내고 아침이 되었다. 이 정도의 사건이라면 아침 밥상머리에서 아내가 모과에 대하여 무언가 말을 좀 더 해야 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아내는 다른 말만 계속할 뿐 모과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참다못한 나머지 내가 먼저 모과 얘기를 꺼냈다. 그때서야 아내의 진정한 반응을 들을 수 있었다. 작년 가을에 나와 썩어가는 모과를, 그것도 어디서 어떻게 보관했던 것인지도 모르는 것을 무엇하러 샀느냐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모과를 살펴보니 정말로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았다. 얼마를 주었느냐는 아내의 물음에 멈칫 하다가 5000원에 샀다고 거짓말까지 하고 말았다. 

  아내가 모과 꾸러미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 명백해진 이상 그것을 집에 놓아두기가 싫어졌다. 그래서 그것을 모두 연구실로 가져왔다. 연구실에서 모과는 아주 빠른 속도로 거무스름하게 변해갔다. 썩어가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썩어가면서도 모과는 악취를 풍기지 않고 원래의 은은한 향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문득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사전은 썩는다는 낱말을 “부패균에 의해 단백질 및 유기물이 유독한 물질과 악취를 발생하게 되는 변화”로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모과가 썩어가는 모습은 사전의 설명과는 상당히 달랐다. 하얀 곰팡이와 함께 썩어가면서도 아무런 악취를 발산하지 않았다. 악취가 아니라 모과 고유의 부드러운 향을 계속 풍기고 있었다. 시간이 더 지나 모두 썩고 썩어 물기가 없어지고, 그 크던 것이 조막만 하게 될 때쯤 되니 이제는 마치 단단한 돌과 같이 아무런 냄새도 없는 그저 딱딱한 물건으로 변했다. 

  모과가 썩어가는 모습은 특별했다. 살다 보면 생명의 끝을 향해가면서도 악취를 풍기지 않는 것이 모과 말고도 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같다. 앞으로는 생명의 끝자락에서도 고약한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을 본다 하여도 너무 신기해 하지는 않을 것이다.  

 


[2010.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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