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蛇莓를 위한 解恨辭

June 20, 2010

蛇莓를 위한 解恨辭

                                                                                                                           명순구

  사매(蛇莓)는 뱀딸기의 다른 이름이다. 뱀딸기는 장미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우리나라의 산과 들 어디를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풀이다. 봄부터 노란 꽃이 피어나고 여름이 가까워지면 둥글게 생긴 탱탱하고 빨간 열매가 달리기 시작하여 늦가을까지도 열매를 잃지 않는다.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지낸 나는 일찍부터 뱀딸기에 대하여 매우 명확한 관념을 유지하고 있었다.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할머니께서는 내게 뱀딸기를 가리키면서 그것은 뱀들이 먹는 딸기이니 절대 먹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뱀딸기가 있는 곳에는 늘 뱀이 돌아다니는 법이니 가까이 가지도 말라는 말씀도 하셨다. 그 가르침은 내 마음 속에 뚜렷이 새겨졌다. 그도 그럴 것이 뱀이 먹는 딸기라 하니 그것을 바라보는 것 초차 싫을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어제까지도 뱀딸기는 내게 뱀이라는 이미지와 결합하여 여전히 유쾌하지 않고 왠지 피해야 할 풀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오늘 실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얼마 전부터 주말에 동네 산을 산책하는 습관이 붙었다. 오늘도 늘 걷던 코스로 길을 가고 있었다. 그 길 중에는 도시생활에서 도피하고 싶은 사람들이 일궈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꽤 넓은 밭도 있다. 그 밭둑 사이로 걸어가다가 문득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빨간 열매를 빽빽하고 탐스럽게 달고 있는 뱀딸기였다. 누가 일부러 심어놓기라도 한 듯 아주 넓게 펼쳐져 있었다. 뱀딸기 밭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의 넓이였다. 이곳저곳에서 뱀딸기를 흔히 보아왔지만 오늘 본 뱀딸기들은 무언가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그 곳을 지나 세 시간 정도의 산행을 하면서도 그 뱀딸기들이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기분 좋게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뱀딸기가 떠나지 않았다. 뱀딸기에는 독이 있을까? 뱀딸기 근처에서 뱀을 본 적도 없고 생김새가 뱀을 닮은 것도 아닌데 그 풀에는 왜 뱀딸기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뱀이 먹는 딸기라고 해서 굳이 사람이 못 먹을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급기야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뱀딸기’라는 검색어를 넣어보았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뱀딸기는 독이 있나요?”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하여 뱀딸기에 관한 갖가지 의문과 정보들이 들어 있었다. 그 중 내게 거의 충격으로 다가온 몇 가지가 있었다. 뱀딸기에는 아무 독이 없다는 것, 산딸기처럼 달콤한 맛은 없으나 어떤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재미삼아 그것을 먹으면서 자랐다는 것, 봄에는 연한 잎과 줄기를 삶아 나물로 무치거나 된장국을 끓여 먹어도 된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뱀딸기에 대한 나의 인식이 완전히 잘못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닫기에 충분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방에서 뱀딸기는 사매(蛇莓)라는 이름의 약재로서 몸속의 독을 없애고, 혈액순환을 촉진하며, 소화 계통에도 효과가 있고, 아울러 외상치료, 항암작용, 면역력 강화 등의 효능이 있어 현대의학에서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적은 양으로도 물이 잘 드는 좋은 염료로 쓰이기도 하는데 매염제로 철을 쓰면 보라색이 염색된다고 한다.

  그 정도의 효능이라면 뱀딸기에게 ‘만병통치약재’ 혹은 ‘익초’(益草)라는 이름을 주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뱀딸기를 정확히 알고 보니 그 노랗게 앙증스런 꽃하며, 탐스럽게 주렁주렁 열린 열매하며, 제 몸 그대로 겨울을 이겨내고 새봄 또다시 싹을 내는 강인성하며, 단조로운 풀밭에 빨간 액센트를 주는 센스하며, 누가 찬미하지 않아도 하늘이 부여한 제 길을 꿋꿋이 지켜가는 의젓함하며, 그의 모든 것이 사랑스러워졌다. 
  회피의 대상이 사랑의 대상으로 전격 전환되었으니 내 변덕은 어찌해야 할까? 내 뱀딸기를 정확히 알지 못해 그리된 것이니 그에게 용서를 구할 수밖에... 여기저기 지천으로 널려 있는 풀이라서, 달콤한 맛을 품고 있지 않아서, 뱀딸기 근처에서 한 두 사람이 뱀에게 낭패를 당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과장되어서, 아니면 또 다른 여러 이유로 뱀딸기는 제 품격에 맞는 대우를 받지 못했던 것 같다. 풀도 한(恨)을 가질 수 있다면 뱀딸기는 내게 한을 품었을 만도 하다. 게다가 얼마전에 안 일이지만, 뱀딸기라는 이름은 그 속에 뱀독을 다스리는 성분이 들어있어서 중국에서부터 '사매'(蛇莓)로 부르던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더욱 그러하다. 만약 그가 한을 품고 있다면 그것을 풀어주기 위해 그에게 정중하게 이 해한사(解恨辭)를 보낸다. 

  “뱀딸기님, 나와 같은 무지한 사람들에게 엉뚱한 오해까지 받으면서도 결코 성내지 않고 제 모습 그대로 땅으로 땅으로만 기어다니면서 그간 그렇게 귀한 일을 참 많이도 하셨네요.”

  “참 대단하세요. 그리고 미안합니다.” 

  “내 오해는 아마 할머니의 손자 사랑에서 비롯된 것 같으니 부디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주세요.”

  “내 이제부터는 뱀딸기님의 숨은 공로를 이웃에게 전하겠습니다.”

  “뱀딸기님은 그 이름말고도 땅딸기, 잠매, 야양매, 게여미탈, 베염탈, 개미딸기 등 여러 이름이 있다는데 혹시 달리 마음에 드는 이름이 있으신지요?” 

  “만약 원하는 다른 이름이 있다면 나부터라도 그 이름으로 불러드릴께요.”

  “혹시 ‘땅딸기’라는 이름은 어떠세요?”

                                                                                                                  [2010.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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