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온전한 잎새만 가진 나무는 없다
온전한 잎새만 가진 나무는 없다 명순구
얼마 전 서울 시내의 한 고층빌딩에 갈 일이 있었다. 요즘 대부분의 고층빌딩이 그러하듯 그 건물 1층도 깔끔하고 세련된 실내디자인을 뽐내고 있었다. 매우 수준높은 솜씨로 제작된 조각 작품도 멋을 더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조각 작품 사이사이 약간 허전해 보일 수 있는 공간에는 큼지막한 화분들이 조화롭게 놓여있었다. 여러 화분 중에 눈길을 끈 것은 벤자민고무나무였다. 뭐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내게 있어서 그 나무는 참 까다로운 존재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윤기가 흐르는 풍성한 잎과 은은한 색깔의 줄기에 끌려 여러 차례 구입하여 집에서 가꿔보았으나 성공을 거둔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대부분은 말라 죽었고 살아 있어도 생각처럼 멋지게 성장하는 모습을 경험하지는 못했다. 이런 나에게 그 건물 1층에 있던 웅장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거대한 벤자민고무나무는 신비한 느낌마저 일으켰다. 벤자민고무나무는 햇빛이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이라야 잘 자랄 수 있다고 알고 있었다. 내 나름대로는 그 나무의 그러한 요구에 맞게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실패만 거듭했는데, 햇빛도 거의 받을 수 없고 바람도 잘 통하지 않는 고층빌딩 1층에서 벤자민고무나무가 어떻게 그렇게 잘 자랄 수 있을까? 물론 그런 곳에 있는 화분들은 전문가들이 관리하는 것이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무언가 모를 궁금증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 나무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혹시 조화와 같은 인공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덥석 손으로 만져보면 당장 확인할 수 있을 것이었지만 그것이 식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는 터라 그리하지는 않고 그저 세밀하게 바라보기로 마음먹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벤자민고무나무가 인공물이 아닌 진짜라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푸르고 윤기있는 무성한 잎새들 사이에 찢어지고 누렇게 변한 잎새들이 군데군데 섞여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잎새들의 생김새도 획일적이지 않았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그 벤자민고무나무는 인공물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자연 화초와 인공 화초를 식별하는 내 나름의 기준을 적용하여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 이제 싱거운 내 궁금증은 해소되었고 그 나무를 떠나 발길을 옮기면서 그 멋지게 생긴 벤자민고무나무를 몇 차례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그러고 있는 터에 내 행동이 궁금했는지 경비사무를 담당하시는 분이 내 옆으로 다가와 “그 나무 멋있죠?”라고 말했다. 나는 “네, 정말 멋지네요!”라고 맞장구를 쳤다. 이에 대한 그 분의 답은 내 예상을 뒤엎는 것이었다. “이거 진짜가 아닙니다.” 그 멋진 벤자민고무나무는 인공 화초였다. 대체로 인공 화초는 온전한 잎새들만 달고 있기 마련이다. 온전한 것뿐만 아니라 상처입고 죽어가는 잎새까지 품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자연 화초로 확신했는데 내 판단이 틀렸던 것이다. 벤자민고무나무의 진정한 모습을 재현한 그 장인의 관찰력과 솜씨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인공 화초의 잎은 모두 같은 모양, 같은 크기, 같은 색깔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리 하지 않으면 제작비가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인공 화초는 자연 화초의 온전한 모습이 아닌 그 대체적인 모습만을 재현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고 보면 그 벤자민고무나무는 참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그야말로 예술작품이었다. 그 날 이후로 오랫동안 나무 옆을 지나칠 때면 혹시 온전한 잎새만 달고 있는지를 살피게 되었다. 나무가 집안에 있는 것이든, 산에 있는 것이든, 들에 있는 것이든 온전한 잎새만 달고 있는 것은 하나도 찾을 수 없다. 모든 나무는 푸르고 싱싱한 잎새들 사이에 벌레먹은 잎, 바람에 찢겨진 잎, 누렇게 생명을 다해가고 있는 잎들을 아우르고 있다. 그것이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나무의 진정한 모습이다. 온전한 잎새만을 가진 나무를 "완전한 나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세상에 완전한 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이라고 해서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 세상에 몸이든 마음이든 어느 구석이 아프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아픔을 자신의 일부로 알고 순순히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수밖에... 나무는 사람과 많이 닮았다.
[2010. 7.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