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태안의 벚나무님, 내년 새봄에 황홀하게 빛나세요

September 29, 2010

태안의 벚나무님, 내년 새봄에 황홀하게 빛나세요 

명순구



  2010년 9월은 태풍으로 시작되었다. 2010년 8월 말 태평양에서 발생한 태풍 ‘곤파스’는 제주도를 거쳐 충청남도 서쪽 해안을 지나 9월 2일에는 서울, 강원도를 거쳐 동해상으로 빠져나갔다. 이 태풍은 듬직하게 서있던 덩치 큰 나무들을 쓰러트릴 만큼의 괴력을 발휘하였다. 산과 들, 정원에 있던 수많은 나무들이 심하게는 목숨을 잃었고, 대부분의 나무들이 최소한 잎새에 상처를 입었다. 특히 충청남도 태안 지역의 나무가 곤욕을 겪었다고 한다. 그 지역의 나무 수만 그루가 뿌리째 뽑히거나 부러졌다고 한다. 그런데 어제 매우 눈길을 끄는 뉴스를 들었다. 태안군 만리포해수욕장 진입도로의 가로수인 벚나무 200여 그루에 지난주부터 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초가을에 벚꽃이라... 유심히 보면 여름이나 가을, 심지어는 겨울에도 한 두 개의 꽃을 달고 있는 벚나무를 발견할 수는 있다. 이와 같이 제철이 아닌 때에 핀 벚꽃은 겨우 몇 송이가 매우 수줍게 피어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번 태안 벚나무의 경우는 사정이 매우 다르다. 태풍으로 인하여 잎새가 모두 떨어진 나무에서 그것도 아주 본격적으로 꽃이 핀 것이다. 

  이 현상 앞에서 일반인은 그저 놀랄 따름이다. 전문가들은 나름대로 초가을의 벚꽃 개화를 설명하고 있다. 어떤 전문가는 태풍에 나뭇잎이 모두 떨어져 내년 봄꽃을 피우기 위한 영양분을 축적하지 못한 상태에서 벚나무가 다시 꽃을 피우고 새잎을 만들어 광합성을 하기 위한 활동에 들어간 것이라고 설명하고, 다른 전문가는 벚나무는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는데 태풍에 잎이 떨어지자 나무가 꽃을 피우라는 생리적 신호로 받아들인 것 같다고 설명한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약간씩 다른 것으로 보아 그들에게도 이 현상은 낯선 모습인 것 같다.  

  식물의 생태에 문외한인 내가 전문가들의 과학적인 설명들에 대하여 무슨 평가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태안에서 피어난 벚꽃 소식과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으면서 좀 엉뚱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우선, 벚나무는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는데 태풍에 잎이 떨어지자 나무가 꽃을 피우라는 생리적 신호로 받아들인 것 같다는 설명을 생각해 본다. 이 설명은 나무에도 영혼이 있다는 내 나름의 평소 생각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벚나무는 잎을 모두 잃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생각 없이 자동적으로 꽃을 피울 정도의 수준에 불과한 존재는 아니라고 본다. 엉뚱한 발상인지는 모르나, 내 눈으로 보기에 나무들은 서로 의사소통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바람과 더불어 즐거운 놀이도 한다. 아주 미미한 바람결에도 큰 나뭇가지들이 크게 흔들거리는 모습을 보면 나무가 단지 바람에 일방적으로 놀아나는 것은 아니고 바람을 즐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으로, 새잎을 만들어 광합성을 하기 위한 활동에 들어간 것이라는 설명을 생각해 본다. 내게는 이 견해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벚나무로서는 무성한 잎을 달고 아직도 한창 광합성을 하여 겨우살이에 필요한 양분을 축적해야 할 시기인데 잎을 모두 잃어버렸으니 난감했을 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벚나무들의 선택은 두 가지로 갈라질 것 같다. 하나는 더 이상의 광합성을 포기하고 아직까지 비축한 양분으로 그냥 겨울을 지내보기로 작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직 겨울이 오기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그때까지만이라도 새잎을 내어 최대한 더 광합성을 해보기로 작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 두 가지 선택 모두 벚나무에게는 상당한 리스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앞의 선택은 자칫하면 긴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양분 부족으로 인하여 낭패를 볼 수 있고, 뒤의 선택은 새잎을 내기에 온힘을 쓰는 도중에 끝내 새잎을 완성하지도 못한 채 추위가 닥쳐와 기대하던 광합성 작용을 본격적으로 가동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기존에 축적된 양분을 새잎을 내는데 소진해 버리는 낭패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리포해수욕장의 벚나무들로서는 참으로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있었던 것 같다. 이 갈림길에서 그들은 두 번째를 선택한 것이다.

  이 선택을 보면서 엉뚱한 단상들이 떠오른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이지만 그때까지만이라도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생명체로서의 열정과 정성스러움이 안쓰러운 느낌과 함께 사랑스럽게 다가온다. 광합성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꽃이 아니라 잎일 것인데 이렇게 다급한 시기에도 꽃을 피운 다음에야 새잎을 내는 벚나무 본연의 질서를 결코 잃지 않는 굳건함이 존경스럽기만 하다. 

  이미 내게 있어서는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 되어버린 200여 그루의 벚나무에게 신의 축복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그들이 기꺼이 감당한 리스크가 현실화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벚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새잎을 내고자 한 의지가 보람이 있도록 올 겨울 추위는 약간 늦게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혹시 추위가 빨리 닥쳐와 비록 그들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하더라도 그들이 이미 축적한 양분으로 겨울을 넉넉히 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내년 새봄에 200여 그루의 모든 벚나무에 황홀한 꽃이 피어났으면 좋겠다. 

 

 
[2010.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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