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서언] <단비>, 고려대학교 출판부, 2013
발 간 사
논바닥이 거북이 등 모양으로 갈라진 모습을 본 적이 있으신지요? 그 곳에 애처롭게 서서 말라가는 벼 포기를 본 적이 있으신지요? 초점을 맞추지 않은 허탈한 눈빛으로 그 논두렁에 앉아 한숨만 내쉬고 있는 농부를 본 적이 있으신지요? 그 논바닥, 그 벼 포기, 그 농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빗방울입니다. 후두두 후두두... 거칠게 내리는 빗방울입니다. 이때에 그렇게 내리는 비를 가리켜 단비(慈雨)라고 합니다.
이 책의 제목을 단비로 정했습니다. 고려대학교에서 배우고 익혔으니 이제 세상에 나가 단비와 같은 존재가 되어달라는 기원과 당부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윤기가 흐르도록 가꿔야 하겠지만, 그것으로 그치지는 말라는 뜻입니다. 모든 정력을 온통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퍼붓는 사람의 인생은 결코 아름답지 못한 것입니다. 작게는 이웃을 위하여 크게는 인류사회를 위하여 자신의 힘을 보탤 구석이 어디인가를 고민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이웃의 고통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모두 헐벗은 동네에서 혼자 밍크코트를 입는 것은 추악한 탐욕일 뿐이니까요.
2012년 9월 고려대학교 교무처는 정년퇴임 교수님들의 퇴임사를 모아 이유록(二有錄)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발간했습니다. 이 책은 교수님들의 이유록과 짝을 이루는 것으로 고려대학교에서 수학하고 졸업하는 학생들의 글로 이루어진 문집입니다. 고려대학교 교무처는 창의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하나하나 실현하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University Plus’입니다. 2012년 1학기부터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안으로는 자기혁신을 통해 늘 새로워지는 고려대학교, 밖으로는 일반적인 대학을 넘어서는 대학(Beyond the university)”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대세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결코 대세에 묻히지 않고 굳건하고 우아하게 빛나는 고려대학교”의 모습을 보여줄 것입니다. 단비의 발간은 University+ 프로젝트의 일부입니다.
2013년 2월에 졸업하는 학생 수를 생각해 보면 이 책에 실린 글의 편수는 너무 적은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시작한 것이니 앞으로 해를 거듭하면서 글도 늘어나고 내용도 풍부해질 것으로 믿습니다.
끝으로, 2013년 졸업생 모두 에게 축하 인사를 드리며, 특히 단비의 발간을 위하여 정성스런 글을 내주신 학생들에게 따스한 격려와 고마움을 전합니다. 여러분들의 그 마음이 있기에 우리 고려대학교가 이렇게 역사 속에서 빛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고려대학교의 울타리를 넘어 씩씩하게 세상으로 나가 단비가 되어 주세요.
2013년 2월
고려대학교 교무처장 명순구
책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