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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계약법입문』, 민들레 제1권, 법문사, 서울, 2004


발 간 사

아기가 태어나면 그에게 이름을 지어줍니다. 아기에게 주어지는 이름 속에는 부모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의지와 희망이 녹아있습니다. 어찌 아기의 이름만 그러하겠습니까? 강, 길, 건물, 강아지, 나무... 이런 것들에게 이름을 붙이는 경우에도 크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 연구실에서는 이번에 저작물 시리즈를 창설하면서 그 이름을 ‘민들레’라고 정하였습니다. 다른 여느 이름과 마찬가지로 ‘민들레’라는 이름 속에는 우리의 의지와 희망이 담겨있습니다. 민들레는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입니다. 민들레는 자신의 주위에 늘 존재하는 바람결의 힘만을 빌려 아주 멀리까지 홀씨를 날려 싹을 내고 꽃을 피워냅니다. 민들레는 척박한 땅에서도 씩씩하게 생명으로서의 고귀한 의무를 수행합니다. 민들레는 한 뿌리에서 여러 송이의 꽃을 피우되 순서를 지킵니다. 민들레는 그 꽃에 꿀이 많아 벌과 같은 다른 생물들을 행복하게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법학도의 법학공부의 범주가 타성과 고정관념에 젖어 시대적 소명을 다하지 못하는 점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내려온 전통적인 법학적 주제에 관한 논쟁에 참여함으로써 법학에 기여하는 것도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 일에 매달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땅히 법학적 관심이 주어져야 할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소외되어 있는 영역을 발견하고 그에 대한 법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일이라든가 혹은 그러한 일을 하기 위한 기초를 마련하는 일도 매우 중요합니다. ‘민들레’ 시리즈를 통하여 우리는 새로운 법학적 과제를 탐색하고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한국 법학도의 인식의 지평을 조금씩 넓혀가고자 합니다. ‘민들레’ 시리즈의 제1권에서 다룬 주제는 미국 계약법입니다. 첫 번째 주제를 이렇게 정한 것은, 미국 계약법이 우리의 그것과 실제에 있어서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을 설득하고, 또한 比較私法의 주된 대상을 독일이나 프랑스, 일본 정도로 하는 태도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함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거래제도 중에는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실제적으로 미국의 법에 의하여 규율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의 私法體系는 영미법계가 아닌 대륙법계이다.”라는 등의 말은 이제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국법에 익숙해지기 위하여 우리는 의도적인 노력을 경주하여야 합니다. 미국 법제도에 대한 깊은 인식과 이해 없이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지켜낼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때때로 ‘이성적(rational)’이라는 것과 ‘온당한(reasonable)’ 것의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 보곤 합니다. 법적 분쟁이 벌어진 경우에 그에 대한 법적 해결책은 ‘온당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분쟁의 당사자가 모두 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성적’인 것이 동시에 ‘온당한’ 해결책입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최종적인 판단기준은 ‘온당함’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이성적’이라는 것에 만족하고 마는 경우도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이성적’이라는 것이 ‘온당함’을 완전하게 담보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법학을 하면서 ‘이성적’이라는 것 위에 ‘온당함’이라는 고도의 기준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던 어리석음은 없었는지, ‘온당함’이라는 기준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을 고려하기가 귀찮아 그냥 넘어간 게으름은 없었는지 반성해 봅니다. ‘민들레’ 시리즈가 세상에 나오기 위하여 여러 사람의 수고를 빌려야 했습니다. 이서현 양은 이 시리즈의 기획취지를 민들레의 이미지에 결합시켜 추상적으로 형상화한 아름다운 엠블럼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조카 정유리 양은 ‘민들레’ 시리즈의 분위기에 합당한 표지 디자인을 해 주었습니다. 두 사람에게 뜨거운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두 사람의 재능이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민들레’ 시리즈의 기획 업무는 일단은 제가 수행합니다. 그러나 이 시리즈의 각 권에 대한 집필자는 제가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연구실은 이 ‘민들레’에 우리들의 파릇한 의지와 희망을 담아가고자 합니다.

2004년 7월 22일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연구실에서 명 순 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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