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서언] <1955년 고려대학교, 법과 시와 음악>,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2015
들어가며
2015년은 역사를 돌아보게 한다. 을미사변 120주년, 을사조약 110주년, 해방 70주년, 국제연합(UN) 창설 70주년, 한일협정 조인 50주년 등 근현대의 굵직한 사건들이 10년으로 딱 떨어지는 해이다. 개교 110주년,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 선생 서거 60주기를 맞는 고려대학교에게도 2015년은 각별한 해이다.
고려대학교는 1905년 설립 당시의 종로 박동(현 수송동)에서, 1918년에는 낙원동으로, 1922년에는 송현동으로 옮겨 다녔다. 1932년 보성전문의 경영을 인수한 인촌은 안암동 일대에 수십만 평의 토지를 구입하고 그 중앙에 돌집을 짓기 시작했다. 이것이 1934년 완성된 본관이다. 현민(玄民) 유진오(兪鎭午) 선생은 당시 보성전문 본관은 총독부 청사 외에는 유례가 없는 초호화 건물이었다면서 일제 압제에서 왜 그리 호사스런 건물을 지었을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그것은 오기요, 반항이요, 겨레에 대한 격려요, 스스로의 분발이었던 것이다. 대망의 신 교사 입주는 1934년 9월 28일에 행하여졌다. “전 교직원, 학생이 교기를 앞세우고 학교간판, 각종 우승기, 컵 등을 들고 송현동 교사를 떠나 안암동을 향해 도보로 열지어 행진하였다. 하늘은 맑게 개고 길가는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서서 우리의 행렬을 축복해 주었다.”
2014년은 안암 동산이 고대인의 마음의 고향이 된 지 80주년이 되는 해였다. 그때 그 결단이 없었다면 고려대학교는 아마 종로의 비좁은 땅에서 매우 삭막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고려대학교가 기품있고 우아한 안암동에 터를 잡은 것은 개교 못지않은 실로 장쾌한 역사이다. 그것을 기억하고자 2014년 가을 “요람에서 광야로”라는 주제로 안암캠퍼스 80주년 기념 콘서트(건축, 문학, 음악)를 열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15년, 110주년의 시기에 다시 고려대학교를 생각해 본다. 역사에는 전환점이 있다. 그간 수많은 선현들이 어려운 시절에 고려대학교에 몸담고 학교와 나라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그 중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1955년 5월 5일 고려대학교 개교 50주년 행사이다. 당시 총장 유진오는 이 행사를 계기로 고려대학교를 혁신하고자 상징적인 핵심사업을 기획했다. 그 사업들은 고려대학교의 정체성 정립과 체제․제도 정비사업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는 고려대학교 현대화의 시작이었다.
역사는 무언가를 소중히 여기고 기억하며 가꾸는 사람들의 것이다. 개교 110주년을 맞아 1955년과 그 전후의 사건으로서 고려대학교의 오늘이 있게 한 핵심 사건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제목은 『1955년 고려대학교, 법과 시와 음악』이다. 왜 법인가? 고려대학교가 1905년 법률과(法律科)와 이재과(理財科)의 보성전문으로부터 출발했으니 법은 고려대학교 110년의 역사를 그대로 공유한다. 게다가 1955년의 체제․제도 정비사업은 학교 규정체계의 정비․혁신이 그 중심이었는데, 이 책에서는 특히 학교규칙의 기본인 학칙을 소개할 것이다. 왜 시와 음악인가? 개교 50주년을 맞아 “행동하는 高大에서 사색하는 高大로”를 표방한 유진오는 보성전문 때부터 내려오던 교가가 독립국 대한민국의 종합대학, 고려대학교의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 당대 최고의 시인(조지훈)과 촉망받는 신예 음악가(윤이상)에게 교가 제정을 의뢰하여 세련된 시어와 우아한 곡조의 교가가 탄생되었다. 위와 같은 이유로 법과 시와 음악을 고려대학교 현대화의 상징으로 보고, 이를 책의 제목으로 삼은 것이다.
이 책은 서론과 세 개의 본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론인 “1955년 5월 5일 소묘”에서는 설립부터 50주년까지의 역사와 50주년 기념행사를 그렸다. 본문은 법(제1장), 시(제2장), 음악(제3장)을 차례로 다루었다. 서론과 제1장은 명순구 교수(법학전문대학원), 제2장(시)은 고형진 교수(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제3장(음악)은 류경선 교수(기초교육원)가 각각 집필을 맡았다.
고려대학교 설립 110주년을 맞아 이 책을 출간하면서, 이를 계기로 앞으로 고려대학교와 한국 근대사에 의미가 있는 책들을 계속 출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보성전문 시기의 교수와 학문활동, 보성전문 출신으로서 역사 속에 묻혀있는 인물의 발굴과 소개, 보성 초기 교과서의 발굴과 현대화 작업 같은 것이 그 예이다. 사업의 계속성을 희망하는 뜻으로 “1905” 시리즈를 창설하고, 이 책을 그 첫 권으로 하고자 한다.
이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새로운 발견이 있었다. 1905년 보성전문의 정확한 위치가 현 조계사라는 사실, 조계사 대웅전 앞 회화나무는 1905년부터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켜왔다는 사실, 고려대학교 교가 악보의 일부가 지금까지 원곡과 달리 기록되어 달리 불려졌다는 사실 등이 그것이다. 앞으로 학교 구성원의 예지를 모아 잘 정리해야 할 문제이다. 특히 학자수(學者樹)로 불리는 회화나무와 고려대학교와의 인연은 앞으로 잘 가꾸어야 할 귀중한 이야기 거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뜻에서 “1905” 시리즈 로고의 테두리를 회화나무 잎으로 장식했다.
이 책을 내는 데 있어 여러 분들의 귀한 도움이 있었다. 이 책은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원장: 김제완 교수)의 전폭적인 지원에 의한 것이다. 고려대학교 박물관의 김상덕 부장님은 이 책에 들어가야 할 사진 등의 자료를 정확하고 정성스럽게 정리해 주셨다. “1905” 시리즈의 로고와 이 책의 표지 디자인은 이서현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이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이 책을 통하여 고려대학교 구성원들이 역사를 인식하고 공감하며, 이를 토대로 더 찬란한 미래를 만들 수 있다면 저자들에게 그보다 큰 영광은 없을 것이다.
2015년 12월
저자들을 대표하여
명 순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