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고려대학교 개교기념일에 관한 상상

May 7, 2019

고려대학교 개교기념일에 관한 상상

 

명순구 

 

 

보성전문이 1905년 박동에서 개교한 시기는 4월 3일이다. 이는 당시의 신문 보도 등의 사료로 보건대 명확하다. 그렇다면 고려대학교 개교기념일은 4월 3일이어야 할 것인데, 현재 고려대학교는 5월 5일을 개교기념일로 기념하고 있다. 

 

개교기념일이 변경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보성전문의 경영주체 변경과 연관된 것인가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도 아니다. 경영주체의 변경이라고 하면 1910년(천도교 인수)과 1932년(중앙학원 인수)을 생각할 수 있는데, 개교기념일이 5월 5일로 된 것은 천도교의 경영이 계속되던 1922년 송현동 시대부터이다(『高麗大學校 70年誌』, 87면). 

 

개교기념일이 변경된 이유가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 신뢰성 있는 견해를 들어본 적이 없어 매우 궁금하다. 1920년대 당시의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은 추정을 해본다. 1920년대는 3.1운동 이후 일제가 문화통치로 정책전환을 하면서 신문, 잡지 등이 활발하게 발간되는데, 그 중에 "開闢"도 있었다. "開闢"은 천도교청년회 발행으로 차상철, 김기전, 방정환 등 보성전문 출신들이 주도했던 잡지로서 우리나라에서 계급 문학 혹은 사회주의 문학의 출발점이 된 매체였다. "開闢"은 초기 사회주의 문학의 산실로서 사회현실과 문학의 관계를 탐구하는 장이었다. 1922년 보성전문이 송현동으로 이전한 시점은 사회주의를 통한 식민지 조선에 대한 사회비판이 매우 활발했던 시기이다. 그에 따라 뜻있는 젋은이들 사이에서 칼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었던 시기이다. 칼 마르크스의 생일이 1818년 5월 5일이다. 요즘과 달리 칼 마르크스의 생일이 5월 5일이라는 사실은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서 꽤 공유되었던 것 같다. 

 

고려대학교 개교 기념일이 4월 3일에서 5월 5일로 변경된 연유와 관련하여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칼 마르크스의 생일과 연계하여 개교기념일을 변경했다 하더라도 1920년 식민지 시대에 그것을 크게 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당시 사회주의는 민족주의와 연계되어 곧 독립의 이념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해방 후 좌우익 간의 이념투쟁의 와중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남한 지역에서 칼 마르크스는 결코 환영받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5.16 쿠데타 이후로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더욱 공고해져 칼 마르크스는 최고의 금기 인물이었다. 그 시대에 그의 생일을 말하는 것은 자멸행위였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러버린 것은 아닐까? 세월이 많이 흐르면 무엇이든 원래 그러했던 것처럼 여겨진다.   

 

<2019. 5. 5. 명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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