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고려대학교 역사가 녹아있는 두 나무

August 21, 2019

고려대학교 역사가 녹아있는 두 나무

 

명 순 구

 

고려대학교의 교목(校木)은 잣나무이다. 1968년 6월 3일자 고대신문(3면)은, 잣나무가 재단이사회와 교무위원회(5월 19일)를 거쳐 교목으로 선정되었음을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교목으로 지정된 것이 지금으로부터 벌써 51년이 되었으니 잣나무와 고려대학교와의 인연도 각별하다. 그런데 교목을 잣나무로 정한 배경은 고려대학교의 역사와는 별다른 연관이 없다. 김장수 교수(농과대)는 같은 신문(2면)에서 그 생태와 함께 잣나무의 학명이 ‘한국송’(Korean White Pine)이어서 고려대학교의 교명(Korea University)과 겹친다는 점이 교목 선정에 크게 작용했음을 밝히고 있다.

 

가만히 뒤를 돌아보면 고려대학교의 역사와 긴밀히 연관되는 나무들이 있다. 오얏나무와 회화나무가 그것이다. 그런데 교목을 선정할 당시에는 역사성을 가진 이들 나무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안타깝게 느껴진다.

 

우선, 고려대학교와 오얏나무의 인연을 보자. 고려대학교의 전신 보성전문학교는 고종황제의 각별한 후원 아래 충숙공 이용익 선생이 설립하였다. ‘보성’(普成)이라는 교명은 논어(論語)에서 따온 것으로 “널리 인간성을 계발한다”는 뜻으로 고종이 하사한 것이다. 보성전문의 경상비(교원 급여 등)는 1908년 “사립학교령”이 제정·시행되기 전까지 궁내부(宮內府)에서 보조했다. 충숙공은 고종의 배려에 대한 충성과 보성전문의 특별한 위상(즉 실질적 황립학교)의 표시로 대한제국 황실 문장인 오얏꽃(李花)을 학교의 상징으로 채택했다. “李”는 조선왕실의 성씨로서 오얏꽃은 조선왕실을 상징했다. 조선왕실이 오얏나무를 왕실의 상징으로 삼았다는 기록은 없지만 조선왕조실록에 ‘오얏’이라는 말이 49회 등장하며, 주로 왕실과 연관된 특별한 의미로 쓰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대한제국 시대에 이르러서는 오얏꽃(李花)을 황실 문양으로 채택하여 덕수궁 석조전 등에 새기는 등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고려대학교 건물에도 본관 뒤쪽 중앙현관 두 기둥 중간에 오얏꽃이 새겨져 있다. 현재 고려대학교 본관이 완성된 것은 보성전문이 종로에서 안암동으로 이사한 1934년인데, 그때까지도 보성전문의 문양은 오얏꽃이었다.

 

오얏나무의 꽃도 꽃이려니와 열매의 의미도 가볍지 않다. 오얏나무는 흔히 자두나무로 불리는데 “자두”는 “자도”(紫桃: 자색 복숭아)에서 변형된 말이다. 자색(紫色)은 고귀한 색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궁궐인 자금성(紫禁城)에도 “紫”자가 들어있다. “紫”자는 북극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자금성은 곧 우주와 같은 공간으로서 하늘로부터 신성함을 부여받은 황제와 그의 가족의 영역이었다. “禁”자는 황제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궁을 들어오거나 떠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동양철학에서 논의되는 태극의 빨강(양)과 파랑(음)을 섞으면 자색이 되는데, 이처럼 자색은 빨강과 파랑이 분극되기 전의 상태라고 한다. 고려대학교 캠퍼스 본관 동쪽 한켠에 수려한 자목련을 심어둔 것도 우연이 아닌 것 같다. 그 자목련은 여느 것과 달리 매우 진한 색깔을 자랑한다. 그 나무는 仁村 선생이 학교를 경영할 때에 특별히 식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으로, 고려대학교와 회화(槐花)나무의 인연을 보자. 예로부터 회화나무는 학자수(學者樹)라 하여 궁궐의 마당, 서원이나 향교 등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에 즐겨 심었다. 중국에서는 집에 회화나무를 심어야 큰 학자나 인물이 나온다고 여겼고, 이 관념은 한국에까지 전파되었다. 중국 주(周)나라에서는 관직을 나무에 비유하여 태사(太師)·태부(太傅)·태보(太保)를 “삼공”(三公)이라 부르고, 삼공을 “삼괴”三槐)라 불렀다. 중국 베이징의 국자감과 공묘(孔廟)에 회화나무가 물결을 이루고, 경복궁·창덕궁·덕수궁·성균관·서원 등에 회화나무가 버티고 있는 이유이다. 예전 양반가에서 이사를 할 때에 회화나무 씨앗은 받아간다는 정도로 귀한 나무이다. 회화나무는 선비와 학문을 상징하는 나무이다.

 

고려대학교의 발원지에도 16세기 이래로 지금까지 수려한 회화나무가 서있다. 고려대학교의 발원지 회화나무의 내막은 이러하다. 1905년 설립 당시 보성전문은 고종황제의 배려로 관립아어학교(官立俄語學校, 러시아어학교) 건물을 빌려 사용했다. 아어학교의 현재 위치는 종로 조계사 옆 수송공원이다. 이용익 선생은 1906년 7월 아어학교에 이웃한 200여 간으로 구성된 김교헌(金敎獻, 1868~1923) 소유의 대저택을 매입하여 학교 시설을 대폭 정비했는데, 그 위치가 현재 종로 조계사이다. 그러므로 고려대학교의 발원지를 조계사 터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 후 보성전문은 1918년 낙원동, 1932년 송현동, 1934년 안암동으로 이사를 하고 그 발원지에는 조계사가 자리를 잡았다. 보성전문의 발원지에는 회화나무가 유난히 많았다고 전해지는데 회화나무의 존재는 그곳이 학자들의 땅이었음을 의미한다. 보성전문의 터이며 고려대학교의 발원지에 회화나무가 많은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곳이 원래 김교헌과 그 조상이 대대로 생활하던 조선시대 명문대가의 터였기 때문이다. 조계사 회화나무 중 눈길을 끄는 것은 대웅전 앞 회화나무이다(서울시 지정보호수 제78호).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은 최근 역사 보듬기 프로젝트의 하나로 그 회화나무에서 종자를 채취하여 고려대학교 캠퍼스에 식재하는 행사를 진행하였다. 2017년 12월 조계사의 협조로 그 나무에서 종자를 채취한 후 2018년 봄 농장에서 발아시켜 묘목으로 성장시킨 후 2019년 5월에 캠퍼스에 식재한 것이다. 학문의 전당인 안암도 고려대학교 캠퍼스에 고려대학교 발원지에서 유래한 학자나무를 심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크다.

 

고려대학교의 교목 잣나무, 그것도 참 좋은 나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잣나무의 일반적인 특성일 뿐 고려대학교만의 스토리를 담고 있지는 않다. 스토리텔링이 구성원간의 정체성 공유와 소통의 방법으로 무게를 가지는 요즘이다. 교목을 제정할 당시에 고려대학교와 회화나무의 인연을 알고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스친다.

 

                                                                                                                                                                                                      [201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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