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국신탁법』, 민들레 제2권, 세창출판사, 서울, 2005
발 간 사 몇 달 전 뜨거웠던 어느 여름날 ‘미국계약법입문’이라는 제목으로 민들레 시리즈 제1권이 출간되었습니다. 새로운 법학적 과제를 탐색하고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겠다는 조금은 색다른 마음으로 시작한 사업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1권과 제2권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너무 크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민들레 시리즈 제2권으로 ‘현대미국신탁법’을 번역·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접하고 있는 신탁(trust)은 영국에서 기원한 것으로 형평법(equity)으로 발전된 개념입니다. 신탁법은 코먼로 법계의 법학교육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교과목으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아마도 신탁제도가 가지고 있는 이론적·실제적 중요성 때문이라고 봅니다. 옥스퍼드(Oxford) 대학교에서 영국 법제사를 연구했던 故 Maitland 교수의 다음과 같은 말은 코먼로 법계에 있어서 신탁제도가 가지는 위치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국인들이 법률학에서 이룬 가장 큰 업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에 대한 가장 적절한 답은, ‘신탁’이라는 제도를 수세기 동안 발전시켜온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신탁제도는 이제 코먼로 법계 국가에서만 이용되는 것으로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이미 신탁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1999년 8개 조문으로 된 ‘유럽 신탁법 원칙(Principles of European Trust Law)’이 공표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중국까지도 2001년에 신탁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제도로 평가되는 신탁제도는 법체계의 차이와 무관하게 빈번하게 이용되는 법적 장치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신탁제도의 유연성(flexibility)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하버드(Havard) 대학교에서 신탁법을 강의했던 故 Scott 교수는 신탁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습니다: “코먼로 법체계의 특색은 유연성에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신탁은 가장 유연한 법적 고안물(장치)이므로...그 적용범위는 매우 넓다.” 또한 현재 예일(Yale) 대학교에서 신탁법을 강의하고 있는 Langbein 교수도 신탁이 많이 이용되는 이유 중의 하나로 유연성을 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1961년에 신탁법이 제정된 이후로 거의 반세기가 지났습니다. 그리고 현재 신탁제도는 부동산투자신탁, 증권투자신탁 등의 금융수단으로서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과는 어울리지 않게 신탁법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는 상당히 미흡한 상태에 있습니다. 앞으로 경제성장과 함께 투자의 형태와 대상은 더욱 다양해질 것이고, 그러한 투자수단으로서 신탁제도의 이용이 더욱 빈번해질 것이 분명합니다.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금융시장이 활발하고 안정적이어야 합니다. 금융법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신탁법에 대한 면밀한 연구가 요구되는 이유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탁제도에 대한 미국의 경험, 그리고 국제금융 시장에서의 미국의 위상을 생각해 볼 때 미국 신탁법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는 학문적 중요성을 인정하기에 충분합니다.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민들레 제2권이 기획된 것입니다. 이 책은 ‘現代米国信託法’(東京, 有信堂, 2002)을 번역한 것입니다. 원래는 다른 연구과정에서 이 책 중의 일부만을 참조하려던 것이었는데, 그 내용이 미국 신탁법의 현대적 변화상을 비교적 잘 설명하고 있다고 판단하여 전체를 번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민들레 제2권은 우리 연구실의 조교로 근무하는 吳英傑 君과 제가 공동으로 작업한 결과물입니다. 평소에 저는 저의 곁에 머물고 있는 훌륭한 여러 제자들로 인하여 행복감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英傑 君도 그러한 제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학문에 뜻을 두고 정진하고 있는 英傑 君은 저의 충고에 따라 신탁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제자와 함께 연구하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색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많은 제자와 더불어 이와 같은 작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자들이 학문적으로 성장하는 한편, 학문에 대한 경외심과 사람에 대한 겸손함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민들레 제2권의 출간에 있어서 몇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우선, 原著者들과 原出版社에 감사합니다. 특히, 東京大學 法學部의 樋口範雄(히구치 노리오) 교수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히구치 교수님은 한국에서 번역본을 내는 일에 대하여 다른 原著者들과 原出版社가 특별한 조건없이 양해를 할 수 있도록 신속하고 적극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할 일을 기꺼이 대신 해 준 히구치 교수님의 배려는 저로 하여금 학문 동업자로서의 따스한 연대감을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다음으로, 세창출판사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 책의 출판을 결정해 주신 이방원 사장님, 그리고 늘 한결같은 성실함이 아름다운 임길남 상무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책표지를 비롯하여 책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하여 구석구석 세심하게 마음을 써주신 김명희 실장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민들레 제1권을 출간하면서 “앞으로 이 시리즈에 우리들의 파릇한 의지와 희망을 담아가고자 합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출간되는 제2권이 그 약속을 지키는 작품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들의 의지가 아직은 꺾이지 않고 생생함을 확인하는 계기는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 봅니다.
2004년 12월 12일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연구실에서 기획자 명 순 구 교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