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아직 초등학교 졸업자는 없다

October 31, 1996

아직 초등학교 졸업자는 없다

명순구(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어느 사회에서든 후세들에 대한 교육은 그 사회의 주요 관심사임이 분명하다. 특히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교육문제에 정신적.물질적 노력을 쏟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학부모의 치마바람이 어쩌고 저쩌고, 각 가정의 사교육비가 얼마이고, 무전기까지 동원되는 대학입학 원서접수에다 대학입시때만 되면 모든 언론매체가 어느 대학의 수석입학자가 누구이고 그 수석입학자가 그 학교에 남아있을 것인가 말것인가를 묻는 인터뷰를 하고 ...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 모두의 지대한 관심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교육제도가 제자리를 잡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인 듯 하다. 

  교육현실에 대한 문제가 상대적으로 심각한 때문인지 최근에는 교육분야에 있어서 대대적인 개혁조치 또는 개혁계획들이 마치 홍수같이 쏟아지고 있다. 물론 모두 잘 해보자는 것이다. 이러한 개혁내용 중에는 학교의 명칭에 대한 변경도 포함되어 있다. 1996년 3월 1일부터 종래의 '국민학교'라는 명칭이 '초등학교'로 대치된 것이다. '국민학교' 이전에도 '보통학교', '소학교', '심상소학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워졌던 것을 특히 '초등학교'로 부르기로 한 데에는 단순한 개명 이상의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도 일제강점시대의 잔재를 청산하고 우리의 역사를 올바른 방향으로 정립시켜 가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 할 것이다. 일제시대에 사용된 국민학교라는 이름은 당시 식민지 국민에 대한 보통교육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데 반해, 초등학교라는 이름은 문자 그대로 앞으로의 상급학교에의 진학을 전제로 한 기초학교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학교명칭의 변경은 매우 적절한 조치로 생각된다. 

  여기에서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국민학교'라는 이름이 '초등학교'로 바뀌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하여 어떠한 평가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초등학교를 다니지도 않았으면서 초등학교를 졸업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거짓말을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 우리 나라에는 초등학교 졸업장을 가진 사람은 한사람도 없고 모두 국민학교 졸업장만을 가지고 있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초등학교 졸업장은 1997년 초에 처음으로 수여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재의 초등학교는 과거 국민학교와 그 실체를 같이하는 것이므로 국민학교 졸업장을 초등학교 졸업장이라고 한다해도 별문제가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국민학교와 초등학교를 구별하지 않는 것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태도일지는 몰라도 최소한 옳바른 태도라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 혹시 국민학교 대신에 초등학교라는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은연중에 국민학교가 내포하고 있는 암울하고 떳떳하지 못한 이미지를 묻어버리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역사는 음미하고 반성하여야 할 대상이라는 점에서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비록 과거의 어떤 사실이 우리에게 자랑스러운 것이 아닐지라도 마찬가지이다. 과거의 사실은 취사선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과거의 사실은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이며 또 그래야만 한다. 그것이 문명국가의 역사에 대한 정당한 태도일 것이다. 

  초등학교를 다닌 적도 없으면서 "나의 초등학교 시절..." 운운하는 것은 비록 의도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마치 과거를 깨끗이 지워버리고자 하는 듯한 몸부림 같은 느낌이 들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면이 있다. 과거를 고려하지 않는 성향은 세대 또는 사회계층간의 갈등요소로 작용하기도 하는 듯 하다.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는 그들이 보다 세련되기 위하여 서로 상대방에게 구하여야 할 것이 많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관계는 사회계층간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들 사이의 바람직한 질서형성에 있어서 관건이 되는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는 그의 과거와 현재를 바로 보고자 하는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국민학교와 초등학교를 혼동하는 태도가 혹시 이러한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는 현상의 일단은 아닐지 하는 걱정이 가슴을 맴돈다. 

  지금은 1996년 10월의 마지막 밤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초등학교 졸업자는 없다. 내년 초에 조금 자란 귀여운 고사리손들에 쥐여질 것이 바로 '초등학교 졸업장'인 것이다. 그리고 국민학교 졸업장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언젠가 초등학교 졸업자들에게 국민학교 졸업장의 의미를 잔잔하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1996년 10월 고대법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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