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朝三暮四' 故事에 대한 재해석
'朝三暮四' 故事에 대한 재해석 명순구(고려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이제 여름의 문턱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 아카시아 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여름은 덥고 습합니다. 그래서 능률이 떨어지기도 하지요.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사유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朝三暮四'라는 고사성어를 통하여 우리의 사는 모습을 한 번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朝三暮四'에 관한 우화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중국 송(宋)나라에 저공(狙公)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원숭이를 사육하고 있었는데, 원숭이가 몇 마리 되지 않았을 때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원숭이의 수가 하나 둘씩 늘어가자 원숭이의 먹이를 구하는 데에 너무 많은 비용이 들어가서 자신의 생활이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狙公은 원숭이들을 불러모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부터는 너희들에게 주는 도토리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주겠다." 이 말을 들은 원숭이들은 모두 화를 내며 소란을 피웠습니다. 이에 당황한 狙公은 다른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주도록 하겠다."하는 말에 원숭이들의 소란은 가라앉았습니다. 이 조삼모사(朝三暮四)의 우화는 장자(莊子)와 열자(列子)의 책, 두 군데에 나온다고 합니다. 장자는 눈앞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서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한 것이라 했고, 열자는 위에 있는 사람이 아랫사람을 교묘하게 조종하는 기술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朝三暮四'에 대한 莊子와 列子의 해석에는 분명히 관점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공통적인 전제는 아침에 3개를 주고 저녁에 4개를 주는 것(朝三暮四)이든 아니면 아침에 4개를 주고 저녁에 3개를 주는 것(朝四暮三)이든 모두 '하루 7개'로 같은 것인데, 원숭이는 어리석게도 그런 이치를 알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朝三暮四와 朝四暮三은 같은 것일까요? 같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朝三暮四보다는 朝四暮三이 원숭이에게 유리한 선택이고, 따라서 그러한 선택을 한 원숭이는 결코 어리석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아주 간단하게 논증될 수 있습니다. 아침식사로서는 3개의 도토리로도 적당한데, 1개의 도토리를 더 가지게 되면 이 1개의 도토리를 다른 원숭이이게 빌려주고 적당한 시기에 빌려준 도토리 1개(원금에 해당)와 더불어 이자를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논리가 자본주의적 사고관념의 기초가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원숭이들을 어리석다고 매도한 莊子와 列子의 판단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거부하고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선택한 원숭이들은 합리적인 경제마인드를 보유한 존재입니다. 한편, 원숭이들이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라는 狙公의 첫 번째 오퍼를 거부하고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선택한 결과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 대하여도 생각할만한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그 하나는, 원숭이들의 양보입니다. 狙公이 朝三暮四, 朝四暮三을 고려하게 된 것은 그의 생활이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므로 그 전에 원숭이들의 하루 식량은 하루에 도토리 7개보다는 많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숭이들은 어쨌든 식사량의 감축을 받아들였습니다. 주인도 살고 자기들도 살기 위한 원숭이들의 결단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다른 하나는, 모든 원숭이들이 동시에 朝四暮三을 선택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들 원숭이 중에서 일부가 朝三暮四보다는 朝四暮三으로 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을 것이고, 이를 안건으로 그들 나름대로의 토론과정을 거쳐 朝四暮三이라는 합리적인 방향으로 결론을 내었을 것입니다. 원숭이들은 이런 토론을 함에 있어서 狙公이 알아들을 수 없는 그들만의 또 다른 언어로 했든가, 아니면 狙公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만일 狙公이 원숭이들의 회의내용, 특히 朝四暮三을 택한 논거를 알 수 있었다면 그로서는 朝四暮三보다는 朝三暮四라는 첫 번째 오퍼를 고집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狙公으로서도 도토리를 아침에 3개씩만 주게 되면 저녁때까지 잉여 도토리를 운용하여 더 많은 도토리를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도토리 일곱 개를 가지고 '3+4', '4+3'의 장난을 치는 狙公의 얄팍한 태도로 볼 때, 충분히 가능한 추론이라고 봅니다. 원숭이들의 진지하고 합리적인 토론내용도 알지 못한 채, "朝三暮四나 朝四暮三이나 결국 똑같은 것인데, 朝三暮四는 거부하고 朝四暮三은 좋다고 하다니 역시 원숭이는 어리석은 것들이야."라는 잘못된 승리감에 취한 狙公이 무척이나 가련해 보입니다. 제반여건을 고려하여 식사량의 감축이라는 기본전제에 어렵게 동의한 원숭이들의 속깊은 마음은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고 '하루 도토리 일곱 개'라는 목적을 달성했다고 만족해 하는 狙公이 탐욕스러워 보입니다. 위의 이야기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난 사안이 아니라 狙公이라는 사람과 원숭이 사이에 있었던 아주 먼 옛날의 일입니다. 옛날 중국 원숭이들의 주식이 도토리였는지, 朝三暮四와 朝四暮三을 놓고 진행된 원숭이들의 토론이 민주적 절차에 따른 것이었는지, 狙公에게 원숭이가 왜 필요했는지, 그까짓 도토리를 가지고 요사스럽게 구는 狙公이 미워 아예 굶어 죽어버릴 생각을 한 원숭이는 없었는지, 매일 같은 종류의 도토리 몇 알을 먹으면서 살기보다는 차라리 굶어 죽더라도 자신들이 갇혀있는 굴레를 끊어 버리고 숲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으로 고민했던 원숭이는 없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음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狙公은 원숭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목적으로 대우하지 않았고 그들을 하나의 수단으로 대했다는 것입니다. 狙公이 원숭이를 조금이라도 배려하고자 했었다면 朝三暮四니 朝四暮三이니 하는 교활한 생각보다는 다른 방안을 생각했어야 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列子는 '朝三暮四'의 어구를 인용하면서, "모든 것이 이와 같은 것이어서 지혜를 가지고 지배하면 힘들이지 않고 지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합니다. 列子는 중국 戰國時代의 인물로 전해지는 사람입니다. 戰國時代는 아주 먼 옛날이고 또한 세상이 너무 복잡하다 보니 그런 말을 했나 봅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국민이 어디 지배의 대상입니까? 우리 나라와 같은 민주사회에 지배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설령 지배자가 있다 한들 그들 중에 狙公 정도 수준의 지혜를 가지지 않은 지배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참으로 이상한 것이 없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狙公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우리 모두가 원숭이이기 때문일까요? 그도 저도 아니면 지혜롭지 못하고 게다가 탐욕스럽기까지 한 狙公이 존재하고, 그런 狙公이 합리적 사고태도는 물론 양보의 미덕까지 겸비한 원숭이들이 하는 말에 도대체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일까요? 잘 생각해 보면 알 것도 같습니다. 같이 사유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진지한 사고태도가 없으면 우리의 삶은 무의미한 것이니까요. [2001. 5.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