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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대추나무에 열매가 많이 열리는 까닭

대추나무에 열매가 많이 열리는 까닭 명 순 구 (고려대 법대 교수) 어제 어떤 모임에서 ‘人生三災’ 이야기가 나왔다. 인생에 세 가지 재난이 있는데, 그 하나는 ‘初年登科’이고, 그 둘은 ‘中年喪配’이고, 그 셋은 ‘老年無錢’이라 하였다. 이들 三災 중에서 특히 관심이 가는 것이 ‘初年登科’였다. 너무 젊어서 출세를 하면 교만한 마음이 커져 더 큰 일을 하지 못하니 그것이 재난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들으면서 대추나무를 생각하였다. 사실 약 1달 전에 우연히 대추나무의 생태를 듣고 참 특이한 나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겨울바람이 사라지기 전에 부지런히 꽃을 피우는 나무들도 많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잎을 내기도 전에 꽃을 먼저 피운다. 매화니 진달래니 개나리니 하는 것들이 그런 나무이다. 이런 나무들이 꽃을 떨어뜨리고 잎으로 단장을 하기 위해 분주한 시기에도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는 나무가 있다. 대추나무이다. 이 시기에도 대추나무는 여전히 겨울이다. 성질이 급한 사람이라면 아마 가지를 꺾어 생사를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할 정도이다. 5월 초 정도가 되면 대추나무는 가지 사이에 연초록의 연한 잎을 낸다. 그런데 이때부터 대추나무는 그 특성을 발휘한다. 늦게 시작한 대신에 대추나무는 너무나 열정적으로 생명활동을 수행한다. 잎을 낸 후 얼마 되지 않아 꽃을 피우고 그 꽃에서 열매가 맺힌 다음 대추나무는 다시 한 차례 꽃을 피우고 그 꽃에서 열매를 만들어 낸다. 그 후에도 늦여름까지 또 다시 꽃을 피우고 또 열매를 맺는다. 그러니까 다른 나무들이 일 년에 한 차례 하는 일을 대추나무는 세 차례나 하는 셈이다. 해마다 대추나무에 열매가 그렇게 많이 열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아직까지는 가을 대추나무에 대추가 풍성한 것을 보면서 그 나무는 의례 그러려니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그 결과는 남들보다 세 배 노력을 기울인 대추나무의 열정의 대가였던 것이다. 대추나무의 풍성한 열매는 남들보다 일찍 시작했기 때문이 아니다. 열매를 익히기 좋을 만한 계절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아주 효율적으로 생명활동을 수행한 결과이다. 만약 5·6월을 기준으로 성적을 매긴다면 대추나무는 꼴찌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나 열매를 맺는 나무들에 대한 평가시점은 가을이어야 한다. 그 시기에 성적을 매긴다면 대추나무는 가히 일등 나무이다. 남들이 화려한 꽃을 피울 때 잎도 내지 못한 대추나무가 그 후에 하는 일은 특이하고 대견스럽다. 대추나무의 확신에 찬 열정이 사랑스럽다. 대추나무는 ‘初年登科’의 재난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나무이다.

[2006년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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