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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학교 앞 상가의 아름다운 간판을 그린다

대학교 앞 상가의 아름다운 간판을 그린다

명순구 (고려대 법대 교수)

행정자치부와 희망제작소는 지난해부터 시민참여 캠페인으로 ‘대한민국 좋은 간판상’을 운영하고 있다. ‘2007 대한민국 좋은 간판상’ 대상은 서울 삼청동 소재의 이탈리아 식당인 ‘푸른 별 귀큰 여우’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목재와 철재의 조화가 뛰어나고 별 모양의 디자인도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우수상을 받은 ‘우리들의 눈’은 시각장애인도 읽을 수 있도록 간판에 구멍을 내 상호를 표기했고, ‘자유빌딩’은 입점한 가게들의 간판을 규격에 맞춰 정리한 종합안내간판을 달아놓아 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시민운동은 간판에 대한 시민들의 높아가는 관심을 대변하고 있다. ‘대한민국 좋은 간판상’을 수상한 간판을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글로만 읽어도 아름다운 간판임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모두 그렇고 그런 간판들 사이에 군계일학과 같이 빼어난 간판을 본 경험을 누구든 한번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간판제작에 예술적 혼을 불어넣었다면 그것은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예술적인 간판의 수가 늘어나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대한민국의 모든 간판이 각각 개별적으로 예술성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으로 끝인가? 그렇지 않다. 간판들끼리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그야말로 ‘제멋대로의 아름다움’이라면 그것은 무언가 모자라는 것이다. 어떤 간판이 제대로 아름답기 위해서는 주위의 경관은 물론 다른 간판과도 어울려야 할 것이다. 한 동네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헐벗고 있는데 어떤 사람 혼자 밍크코트를 걸치고 있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무질서한 간판은 우리나라 도시미관을 해치는 주요인이다. 한 건물에 각양각색의 간판이 서로 경쟁하듯 종횡으로 들쭉날쭉 걸려있다. 간판의 크기와 설치위치를 놓고 이웃간에 법정다툼도 드물지 않다. 건물의 규모가 커지고 층수가 높아짐에 따라 간판 문제는 심각성을 더하여 ‘간판전쟁’이라는 말까지 등장하고 있다. ‘간판전쟁’ 하면 홍콩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홍콩 시내의 택시 지붕에는 덮개가 있는데 이는 간판과 관계가 깊다. 여름에 태풍이 잦고 그 때마다 상점의 간판이 자주 떨어지다 보니 덮개를 하여 방패로 삼는다는 것이다. 태풍이 잦은 지역이라면 태풍이 와도 간판으로 인한 피해가 없도록 보다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이 바른 태도가 아닐까? 택시야 덮개를 하면 된다지만 사람은 어떻게 대처를 하여야 한단 말인가? 쇠로 만든 갑옷을 입고 다니란 말인가?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 보자. 간판에 대해서 무언가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할 것 없이 간판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하는 것 같다. 간판 문제 해결의 기본방향은 무엇일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왜 간판에 그렇게 집착할 수밖에 없는가?”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 같다. 간판에 집착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을 가장 중요한 광고수단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간판은 매우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저비용의 광고수단이다. 아날로그 정보시대에는 간판이 아닌 방법으로 광고를 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벅찬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간판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고, 간판의 크기와 위치를 놓고 경쟁을 하다 보니 건물 외벽은 온통 간판으로 뒤덮이게 된다. 그런데 이제는 정보수단의 패러다임이 달라졌다. 인터넷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인터넷을 이용하여 ‘입소문 마케팅’이라는 새로운 기법의 마케팅이 주목을 받는 시대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간판공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간판을 대체할 수 있는 저비용의 효율적 광고수단이 확실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간판을 대체하는 구체적 방법이다. 한 건물에 같은 크기의 거대한 간판이 20개가 걸려있는데 그 중에 하나에 대해서만 간판을 줄이고 대체광고 쪽으로 전환하라고 한다면 그 말을 들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20개 전체가 동시에 하도록 유도해야만 목표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미국과 소련이 군축을 통하여 세계질서를 좀 더 평화로운 쪽으로 끌고 왔듯이 말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디지털 매체를 활용하여 간판을 대체할 수 있는 사업을 정책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어떨까. 성공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선정하여 시범사업을 한 번 해보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가령 고려대학교 앞 상가를 대상으로 간판대체사업과 동시에 간판정리사업을 시행하는 것이다. 학교, 학생, 상인, 서울시청, 성북구청이 협력하면 신명나는 사업이 될 수도 있다. 학교앞 상가의 경우에는 간판의 광고기능이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학교앞 상점들의 주고객이 간판을 보고 상점을 선택하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은 사업의 성공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컴퓨터에 밝은 학생들은 인터넷을 이용한 간판대체사업을 돕고, 디자인을 잘하는 학생은 아담하고 예술적인 간판을 만들어 주는 등의 방법으로 학생들이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보람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청과 성북구청이 효율적으로 행정지원을 하고, 학교는 각 주체들의 활동에 윤활작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교 앞 상가의 간판이 위와 같은 협력사업의 결과 말끔하게 정리되었다고 해보자. 아마 그 파급효과는 결코 미미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간판 걱정이 없는 다른 나라의 도시들도 처음부터 말끔한 간판문화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름다운 문화는 저절로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상호양보와 인내 속에서 힘겹게 그리고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는 것이다.

[2008.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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