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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서언] 러시아법입문, 세창출판사, 2009

발간사

2004년 민들레시리즈를 시작한 이후 2006년까지 모두 다섯 권을 발간했습니다. 그로부터 오랜 기간 동안 후속물이 없다가 2009년이 끝을 향하는 때에야 비로소 『러시아법입문』의 이름으로 민들레 제6권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주 어릴 적 그러니까 1970년대에 러시아는 마음속에 참 묘한 나라로 새겨졌던 것 같습니다. 문학·예술과 같이 가장 아름다운 것과 음모·전쟁과 같이 가장 잔인하고 음산한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는 땅이라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세상 어디든 그렇지 않은 곳이 없을 것 같기도 한데 유독 러시아에 대하여 그런 생각이 강했던 것은 냉전시대에 이루어진 반공교육의 영향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교육의 효과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이 나라에서 러시아 작가의 글을 읽는 것이 허용된다는 사실조차 신기하게 여겼던 기억도 있습니다. 러시아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980년대 중반 대학원 시절이었습니다. 석사과정에 입학하여 당시 지도교수로 모시고 있던 崔達坤 선생님의 연구실에서 신기한 책을 보았습니다. 진노랑의 두툼한 커튼으로 덮혀있던 책꽂이에는 소련, 북한,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의 법에 관한 책과 자료가 가득했습니다. 제가 북한에서 발간된 책을 처음 본 것이 그때였습니다. 물론 제 공부 방향이 사회주의법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책들은 대체로 단순한 구경거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崔 선생님께서는 사회주의법 연구의 필요성에 대하여 꽤 자주 말씀해 주셨습니다. “세계의 반쪽을 지배하는 법을 아는 것은 당연한 학문적 요구이다”라든가 “남한과 북한이 언제까지 대립각을 세우지는 않을 것이고 어느 시기가 되면 서로 상대방의 법을 이해할 필요가 있을 터인데 학문은 그 때를 대비해야 한다”라는 말씀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영향이겠지요, 저는 러시아법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누군가는 그것을 깊이 연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심각하게 유지했습니다. 그러던 중 약 3년 전에 이제우 군을 소개받았습니다.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석영중 교수님과 사학과 민경현 교수님으로부터였습니다. 두 분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제우 군은 러시아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한 후 대학원 법학과에 입학하여 저의 지도로 법학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친애하는 제자와 함께 글을 쓰고 고민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즐거운 일입니다. 이 작업을 통하여 이제우 군이 학문의 참된 의미와 사회를 바라보는 바르고 따스한 시각을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년에 국비유학생으로 러시아에 들어가 박사과정을 수행할 이제우 군이 조국과 세계에 모두 충성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법학자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3년이라는 오랜 침묵 끝에 민들레 제6권이 나오게 된 것을 스스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서 러시아법 연구의 활성화를 위한 촉매가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 책의 발간목적은 충분히 달성된 것입니다. 2009년 11월 3일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연구실에서 기획자 명순구 드림 머리말

냉전시대에 러시아는 우리에게 있어서 무시무시하고 먼 이웃나라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약 20년 전 수교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러시아 사이의 교류는 그 분야와 빈도에 있어서 엄청난 성장이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러시아에 대한 교육·연구 인프라가 확충되고 전문인력이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경향에 발맞추어 법률실무 분야에 있어서는 국내 로펌에서 러시아 변호사를 만나는 일이 별로 낯설지 않습니다. 러시아법에 대한 수요가 그만큼 증가했다는 의미이겠지요. 그런데 러시아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전문인력은 극소수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러시아는 한반도에 있어서 과거·현재는 물론 미래에 있어서도 전략적으로 중요한 이웃국가입니다. 그런데 러시아는 한국과 일대일의 관계에서만 중요성을 가지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인류 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러시아는 주도적으로 주변국가에 이데올로기와 함께 그것을 담아낼 수 있는 법을 수출했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수입국 중에는 물론 중국과 북한도 포함됩니다. 중국과 북한의 초기 법체제 정비에 있어서 러시아의 공로가 현저합니다. 이는 중국과 북한의 법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러시아법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러시아법의 역사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구소련을 구성하던 독립국가연합(CIS) 회원국들의 역사의 상당부분을 이루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사정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러시아법에 대한 종래의 연구성과는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여 수요를 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아직까지도 그 수요를 감지하지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자들은 현재의 러시아법에 대한 이해와 앞으로의 발전방향을 예측하는 데 있어 역사적 접근이 긴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하여 러시아민족의 건국시기부터 오늘날까지 1000년의 시간을 다루어 보고자 했습니다. 당초 예상과 달리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연구물은 국내는 물론 러시아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이 책은 러시아의 역사발전 단계에 따라 법 내지 법제도가 어떻게 형성·발전되었는가에 관하여 그 핵심을 담고자 했습니다. 키예프공국, 모스크바공국, 제정러시아, 소비에트연방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별로 국가·정치적 배경에 대한 서술을 토대로 법제도를 개관했습니다. 이 책은 러시아법의 근본특질을 “기독교의 수용”(①), “전제주의 정치문화”(②), “서유럽으로부터의 고립”(③)으로 요약할 수 있음을 보여줄 것입니다. ①로 인하여 러시아가 서유럽과 법의 뿌리를 공유하게 됩니다. 반면에 ②·③은 러시아법이 서유럽의 법과 구별되는 요인이 됩니다. 한편, 러시아는 구소련의 붕괴 이후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급진적으로 추진했는데 이것도 지금 러시아법의 현대화·체계화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도 러시아법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예상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순간순간 느낀 점이 적지 않습니다. 이혼제도의 변화를 보면서 이데올로기의 허무성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1917년 혁명 직후 러시아는 친족법을 세속화하면서 까다로운 이혼절차가 모두 폐지되고 부부 일방의 의사만으로도 이혼이 허용되었습니다. 혁명이념에 기초한 이혼의 자유 및 여성해방이 그 근거였습니다. 그런데 1930년대 중반에 들어와서는 이혼절차를 복잡하게 하면서 심지어는 이혼사실을 신분증명서에 기재하고 신문에 공포하며 이혼 횟수에 따라 벌금을 내도록 하였습니다. 동일한 체제와 정권 아래에서 어떻게 이와 같은 극단적인 변화가 가능할까요? 당시 소련 당국자는 이혼제도의 변경이유를 사회주의적 가정 관념이 확립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자세히 보면 그것은 정치적 명분에 불과하고 진짜 이유는 인구감소를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러시아법입문』은 공동작업의 결과입니다. 저로서는 러시아의 역사와 법제도를 개관할 수 있는 계기, 이제우 군으로서는 앞으로 자신이 걸어가야 할 학문생활의 큰 그림을 그려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하여 시작한 일입니다. 이 책을 공동집필함에 있어서 저는 체계구성과 국내의 연구물을 분석·정리하였고 이제우 군은 그에 대응하여 외국문헌(특히 러시아문헌)을 분석·정리하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사안에 따라 한국법과 러시아법에 대한 비교법적 평가를 하는 일은 제가 수행했습니다. 끝으로 교정과 색인 작업은 이제우 군이 담당했습니다. 이 책은 그 집필취지에 따라 러시아의 공법과 사법 전체를 아우르기 위해서 어느 특정 분야를 집중적으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서술하면서 활용한 문헌 가운데에는 개별법 영역에 관한 연구물도 많았지만 러시아의 국가 및 법의 역사 전반을 다룬 문헌들도 중요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특정 시기와 특정 분야에 대해서는 자료가 극소한 관계로 소수의 문헌에 의존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 책에서 반드시 참고했어야 할 주요 문헌이 포함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 점은 공동저자들이 넘기 어려운 한계입니다. 이 책의 사용방법에 대해서 간단히 말씀드립니다. 첫째, 독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각 문단의 맨 앞에 아라비아 숫자로 된 문단번호를 표시하였습니다. 특히 논리전개의 흐름을 최대한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개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문단번호를 통하여 이 책 전반에 걸쳐 있는 관련 내용을 상호참조주로 연결했습니다. 둘째, 러시아의 법률 및 기타 용어는 가능하면 우리말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번역이 오히려 이해를 방해하는 경우 원어를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셋째, 러시아 용어를 번역한 경우라 하더라도 번역어 뒤에 괄호를 달아 원어(때에 따라서는 영어 병기)를 추가하였습니다. 넷째, 책의 말미에 부록으로 러시아 법제도와 정치‧사회사의 연표를 실었습니다. 탈고를 하면서 이 책이 『러시아법입문』이라는 제목에 부합하는 내용을 충실하게 담았는지 두려운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또한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정통한 분들이 보시기에 부족한 부분이 허다할 것입니다. 책을 내면서도 즐거워할 수만은 없는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발간하고자 용기를 낸 것은 이 책이 러시아의 법을 연구할 필요성을 일깨우는 역할은 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한국 법학계에 그 정도의 기여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저희들에게 큰 영광이 될 것입니다.

2009년 11월 5일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연구실에서 공동저자를 대표하여 명순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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