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서언] 국적과 법, 그 기원과 미래, 로두스 제1권, 고려대학교법학연구원, 2010

December 31, 2009

발간사

 


  현대 법학은 전문화의 경향이 뚜렷합니다. 내 마음이 어느 한 전문영역으로 깊어지면 다른 일에 몰두하는 동료와 생각을 나누기가 어려워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문화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가령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잘 살 수 있는 사회 구축)과는 상관없이 전문화 자체가 목적으로 격상되는 오류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전문화된 법학이 자기폐쇄 경향으로 이어져 다른 학문분야와의 융합 기회를 소홀히 한다든가 일반인과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실한다면 법학의 전문화는 그 의미를 잃거나 혹은 최소한 새로운 발전동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법학적 이슈가 법률가라는 전문가 집단 안에서 폐쇄적 담론으로 그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학제연구·통섭·융합의 학문태도가 중시되는 이 시기에 법률가들도 이 경향에 보다 적극적으로 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로두스 시리즈 출간사업은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기획되었습니다.

  로두스(Rodhus)는 에게해 남동부에 위치한 그리스 령에 속하는 큰 섬입니다. 로두스는 관광명소이기도 하지만 세인들에게 많이 알려지기로는 우선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섬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솝우화 속에서 한 사람이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허풍스럽게 말합니다. “나는 로두스 섬에서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높이 뛸 수 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한 친구가 말합니다. “여기가 로두스다, 여기에서 뛰어봐라!”(Hic Rhodus, hic salta!) 세상에서 가장 높이 뛸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주장이 진실이라면 어디서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이 보다 값진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헤겔과 마르크스가 이 에피소드를 인용하면서 로두스는 다소 비장하고 엄숙한 의미를 담게 되었습니다. 

  로두스 시리즈는 사회적·실천적 의미를 가진 법적 이슈를 선정하여 시각은 전문가 수준을 유지하되 표현방식과 문체는 매우 평이한 모습을 유지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같은 주제에 대하여 법학 외의 학문을 하는 분들, 더 나아가서는 일반인들과 소통하고자 합니다. 이는 법학적 담론에 대한 보다 깊고 넓은 논의를 유발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와 같은 긍정적 효과에도 불구하고 종래 우리나라 법학 분야에 있어서 이러한 종류의 책 출간이 활발하지 않았습니다. 저술가들의 관심 부족, 출판시장에서의 수익성 부족 등이 중요한 이유일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의미를 가지는 일은 그 실행에 약간의 어려움이 따른다 하더라도 극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2008년 여름 경 고려대학교 비교법연구센터가 로두스 발간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출간에 소요되는 비용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글로벌 경제위기로 표현될 만큼 국내외 경제사정이 크게 악화된 시기였습니다. 이때 우리들의 계획에 대하여 법무법인 율촌이 선뜻 후원의 뜻을 전해주셨습니다. 우창록 대표님과 박주봉 변호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을 아주 쉽게 해주신 귀한 마음을 잊지 않고자 합니다.

  로두스는 2009년 첫 사업으로 국적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앞으로 매년 최소한 1권의 로두스를 세상에 내놓을 것입니다. 로두스는 그 창설취지에 부합하는 주제를 힘써 탐구할 것입니다. 그리고 로두스가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한껏 열려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로두스 시리즈는 추상의 세계에만 머물지 않고 오늘 이 땅에 실재하는 법에 관한 담론에 힘써 참여하고자 합니다. 현실에 대한 참여는 법학이 관념의 굴레에 갇히지 않도록 도와줄 것으로 믿습니다.

 


2009년 12월 31일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비교법연구센터 소장
명순구 드림



머리말

 


  로두스 시리즈를 창설하면서 그 첫 테마로서 국적과 법의 문제를 선택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국적을 보는 관점은 개인별 편차가 매우 큰 반면, 국적에 관한 법정책은 현재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어 폭넓은 토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1948년 국적법을 제정하던 시기에 이 나라의 지배적 관념은 대체로 민족과 국적을 동일시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국제규범의 실효성(實效性)이 점점 강화되고, 국적정책이 사회통합과 국가경쟁력 확보에 미치는 영향이 현저해지면서 우리 국적법은 상당한 변화를 거듭했습니다. 

  어느 나라이든 국적법을 제정·개정하는 일은 까다로운 일입니다. 각 개별국가의 역사적·사회적 환경이 국적법에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주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는 사실, 19세기 이후 일제강점기에 걸쳐 한인(韓人)들이 다양한 형태로 인접국가인 일본, 중국 및 러시아 등지로 이주했었다는 사실 등이 국적의 이론과 실제에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를 야기시킵니다. 남북한의 대치상황과 아울러 병역 문제는 국적정책 수립을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입니다. 이 책은 『국적과 법, 그 기원과 미래』라는 제목 아래 국적제도의 기원(제1장), 한국 국적법의 성립과 변천(제2장), 한국 국적법의 발전방향(제3장)을 다루었습니다.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 법무부는 국적법개정안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2009년 12월 29일 정부가 마련한 국적법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심의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이 책의 제3장에서는 부분적으로 최근 개정안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국적제도의 역사에 대한 근본적 이해와 미래에 대한 장기적 전망을 돕고자 하는 취지에 따라 개정안을 상세하게 해설하기보다는 앞으로 우리나라 국적정책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보다 큰 구도의 논의를 추구합니다.  

  땅에서 올려다 본 하늘에는 특별한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바다에도 마찬가지로 길이 나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늘과 바다에는 비행기와 배가 다니는 길이 따로 있습니다. 그런데 종래의 하늘 길, 바다 길보다 더 좋은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이 미래 한국 국적법의 바람직한 발전에 티끌만한 기여라도 할 수 있다면 필자들에게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2009년 12월 31일
공동집필자 명순구, 이철우, 김기창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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